어린 시절, 경복궁에서 대취타를 연주하며 행진하는 전통 군악대를 본 적이 있다. 뿌웅~ 뿌웅~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렁찬 중저음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통 군악대의 악기 중 하나인 ‘나각(螺角)’의 소리였다. 커다란 고둥껍데기에서 나오는 웅장한 소리는 어린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각은 실제로 ‘나팔고둥’(Charonia lampas)이라는 고둥의 껍데기를 가공해 만든 것이다. 나팔고둥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둥류 중 가장 큰 종으로 길이가 최대 40㎝에 이른다. 나선형으로 단단하게 말린 껍데기를 가지고 있으며, 입구는 넓고 가장자리는 두꺼워 울림통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 덕분에 예로부터 나각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외국산 고둥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종은 인도·서태평양, 대서양 등지에 널리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바닷속 바위 지대에 제한적으로 서식하며 개체 수가 매우 드문 편이다. 나팔고둥은 그 아름다운 껍데기와 풍부한 육질로 인해 과거 관상용이나 식용으로 많이 채취되었다. 이로 인해 서식 밀도가 크게 감소해 환경부는 나팔고둥을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해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