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급식의 식재료 구매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경기도를 한바탕 흔들었습니다. 경제성을 앞세워 입찰 방식의 효율성을 키우려던 교육 당국과 학교급식의 본질인 건강이 침해받을 것이라 우려한 일부 학부모, 시민단체가 충돌한 겁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중재에 나섰습니다. 7일 오전 경기도교육청 광교 청사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들의 집회에 참석한 김 지사는 “학교급식은 경제 효율성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시민단체 측에 힘을 보탰습니다. 구매방식을 변경하려던 교육 당국은 일단 보류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 “공적 공급체계는 경기도형 협치 인프라”…경쟁입찰 제동
이 과정에서 김 지사는 친환경급식의 공적 공급체계를 ‘경기도형 협치 인프라’로 표현했습니다. “(급작스러운 공급방식 변경은) 도와 교육청, 도의회, 시민단체, 학부모 등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프라를 한순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예산 지원이나 우선순위 조정 등 도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친환경급식은 도교육청이 주도하는 사업이지만 예산은 도와 시·군이 함께 내는 방식입니다. 도교육청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도와 시민단체들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23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기존 수의계약 방식의 급식 식재료 구매를 10월1일부터 경쟁입찰로 전환한다고 밝혔습니다. 동일 업체와의 수의계약 횟수를 연간 5회로 제한한다는 방침도 전달했습니다. 일종의 ‘급식 식재료 구매방식 개선’입니다.
도교육청은 예산 절감과 독점 구조 개선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당연한 조치처럼 보입니다.
사실 교육 당국은 내년부터 학교급식 관련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예산 절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공급이 제한된 친환경 농산물에 매달리기보다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에 경쟁을 붙여 공급한다는 계획이었죠.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 농산물도 안전성 검사 등을 거치기에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봤습니다.
도교육청의 공문을 살펴보면 지난해 학교급식 식재료 계약 10건 중 8건 이상이 1인 견적 수의계약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런 횟수를 제한해 공급 구조를 다변화하고, 단가를 절감하려던 겁니다. 기존 1개월이던 계약 단위를 2개월·분기별 권장·확대하고, 교육지원청 단위의 공동구매 품목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 도교육청 “예산 절감, 독점 개선” vs 시민단체 “친환경 식재료 공급 붕괴”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뒤따랐습니다. 경기먹거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 학교급식 학부모 모니터링단 등 여러 시민단체는 “기존 공급 구조가 무너지면 친환경 식재료 생산과 공급이 모두 타격을 입는다”며 철회를 촉구했죠.
배경에는 ‘경기도형 공공급식 모델’이 있습니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이 생산 농가와 사전 계약을 통해 농산물 구매를 약속하는 식으로 안정적 재배 기반을 보장하고, 이렇게 확보한 식재료를 각 학교에 보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수의계약 제한으로 농수산진흥원이 중심이 된 이 구조가 흔들리면 공적 조달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데, 도교육청의 바뀐 지침에 따라 경쟁입찰이 이뤄지면 친환경 농가들의 재배 포기가 속출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기후·날씨에 따른 가격 변동이 큰 농산물, 특히 친환경 농산물은 연간 12차례 계약을 통해 생산량을 미리 정해야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 친환경 농가 관계자는 “(친환경 농산물은) 농약 등을 쓰지 않아 인건비는 배 이상 들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오히려 상품성이 떨어져 일반 농산물과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며 “생산 농산물의 90% 이상을 학교급식으로 보내는데 판로가 사라지면 친환경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 학교급식지원센터협의회 관계자도 “20년 넘게 경기도에서 친환경급식이 운영됐는데 바뀐 방식을 적용하면 근간부터 흔들린다”며 “도와 시·군이 함께 (돈을) 내는 사업에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농수산진흥원은 배추, 감자, 마늘, 양파 등 친환경 농산물을 매년 도내 1200여 친환경 농가와 계약재배하고 있습니다. 2만t 넘게 수매해 지역 1305개 학교에 공급 중입니다. 자체적으로 친환경 농산물 공급센터를 운영하는 용인·성남·화성·고양 등을 제외하면 도내 진흥원의 계약 비율은 70%를 훌쩍 넘습니다.
◆ 김동연·임태희 두 차례 통화…도교육청, 구매방식 변경 보류
시민단체들의 규탄집회는 7일 오전 도교육청 광교 청사 앞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김 지사도 참석해 지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도교육청의 지침이 바뀔 때까지 함께하겠다”며 연대 의사도 밝혔죠. 도청 집무실에선 ‘학교급식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와 면담을 갖고 친환경 농가와 학부모, 학교가 함께 지속 가능한 급식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김 지사는 “입찰(방식)이 단기적 효율성이 있어 보일 수는 있지만, 학교급식의 거버넌스나 시스템이 무너지면 가격을 장담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는 가격이나 공급 안정성 모두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도와 교육청, 시민단체, 학부모 도의회 등이 지금까지 쌓아온 협치 인프라를 한순간 무너뜨릴 수 있어 도가 예산 지원, 예산의 우선순위 조정 등 해결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 지사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과도 두 차례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같은 시각 임 교육감은 도교육청 기자실을 방문해 “논란이 된 수의계약 제한 방침을 당분간 시행하지 않겠다”며 보류 입장을 밝혔습니다.
임 교육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학교에서 현재 주로 계약을 맺는 농수산진흥원 외에 다른 구매처인 로컬푸드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이런 면을 반영해서 구매방식을 개선하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학교에 자율을 준다는 정책 기조와도 맞아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문을 내려보냈는데 수의계약 횟수를 제한한 건 자율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고 학교 현장에서는 갑자기 구매처를 다양화하기 어려운 실무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오늘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보류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