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강제 징용된 조선인과 그 가족을 태운 첫 귀국선인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 침몰 사고는 그 원인도, 사상자 수도 80년이 다 되도록 의문으로 남아 있다. 1945년 8월22일 오미나토항에서 닻을 올린 우키시마호의 목적지는 부산. 어쩐 일인지 돌연 방향을 바꿔 교토 마이즈루항으로 향하다 같은 달 24일 선체 밑부분 폭발로 침몰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해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승선한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한국인 생존자 등은 이후 일본이 고의로 폭파했다며 맞섰고, 유족 측은 조사 결과 피해자가 1만2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1942년 2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해저 탄광(조세이)에 바닷물이 들어와 갱도가 무너지면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숨졌다. 일본 정부는 갱도 입구나 유골 위치를 알 수 없다며 희생자 발굴에 미온적이었는데, 1991년 설립된 현지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수차례 발굴 끝에 지난해 10월 입구를 발견했다. 이 단체는 시민 모금으로 자금을 마련해 유족회 등과 한·일 잠수부 공동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최근 사고 현장으로 이어지는 바다 밑 통로도 확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