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핵폭탄을 투하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 독점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1949년 소련이 자체 핵 개발에 성공하며 핵 균형이 형성되었고, 이는 곧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구조적 억제력을 기반으로 한 냉전 질서로 이어졌다. 미국의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이 시기를 ‘긴 평화(long peace)’라 불렀다. 이는 미·소 양국이 핵보유국으로서 서로를 직접 공격하지 못했던 억제 효과가 전면전의 방지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는 군축과 비확산을 통해 핵 질서를 안정시키려 했으나 21세기에 접어들며 그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의 중거리핵전력조약 탈퇴다. 이러한 미국의 결정에 러시아의 조약 위반도 영향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더 큰 요인이었다. 중거리핵전력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양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고 중거리 미사일을 대량생산 및 배치하고 있는 중국은 이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다극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과거 냉전기 체결된 양자조약의 실효성이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핵 위협을 전면화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다면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2020년 채택한 ‘국가 핵억제 기본 원칙’은 러시아에 대한 재래식 공격에도 핵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또한 핵은 더 이상 억제 수단만이 아니라 외교적 강압의 수단으로도 더욱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 중국 역시 전략핵전력을 대규모로 증강 중이며 북한 역시 핵보유국 지위를 법적으로 천명한 상태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두 국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핵 사용의 임계치를 낮게 설정하고 있어 위기 안정성을 약화시키고도 있다. 요컨대 핵을 둘러싼 전략 환경은 냉전기보다 불확실성이 배가된 비대칭적 핵다극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