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파티가 서울에서도 시작됐다. 원작 발간 100년 만이다. 술과 음악, 춤이 넘쳐나는 대저택의 화려한 파티는 해안 건너편 옛사랑에게 보내는 한 남자의 연서(戀書)다. 음악과 노래는 무대를 빈틈없이 채우고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온 배우들은 재즈 시대의 화려한 허무를 재현한다. 한 남자의 순정을 비추며 “너의 꿈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해안가 초록 불빛은 오랫동안 기억될 아스라한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봄 미국 뉴욕 세계 초연, 올봄 영국 런던 초연에 이어 8월 서울 공연이 시작된 ‘위대한 개츠비’는 은둔형 백만장자 개츠비가 유부녀가 된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으려는 이야기다. 1920년대 뉴욕 인근 롱아일랜드. 꿈을 찾기 위해 미국 중서부에서 뉴욕에 온 닉은 이웃 개츠비의 성대한 파티에 발을 들인다. 개츠비는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불법으로 쌓아 올린 부와 환상으로 밤을 밝히며 결국 유혹에 성공한다. 하지만 개츠비가 밤새 바라보던 톰·데이지 부부 저택 부두에 달린 등불의 녹색 불빛처럼 데이지는 노를 저어 다가가도 다시 멀어지는 존재다. 그리고 개츠비는 허망하게 죽는다.
소설에선 닉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뮤지컬에선 데이지·조던·머틀 등 등장인물이 각자의 노래와 장면으로 속마음을 밝힌다. 닉과 조던의 사랑도 보다 극적인 순간 직접적인 모습으로 깨어지며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의 노래들은 신선하며 귓가를 사로잡는다. 개츠비의 ‘포 허’, 조던·닉·앙상블의 ‘뉴 머니’, 머틀의 ‘원 웨이 로드’ 등이 흥행작으로서 ‘위대한 개츠비’를 뒷받침한다.
이미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뉴욕·런던보다 뛰어난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프로듀서 신춘수의 의지로 구성된 이번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크고 작은 배역 모두 베테랑 배우들이 무대를 빛낸다. 특히 조던 역을 맡은 앰버 아르돌리노의 날렵한 춤과 노래, 연기가 도드라진다. 머틀 역의 제나 드 월은 자신의 독무대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줬다. 넷플릭스에도 올라온 뮤지컬 ‘다이애나’의 주역이자 ‘위키드’의 글린다로도 활약한 배우다운 무대였다.
웨스 윌리엄스(톰), 에드 스타우덴마이어(마이어 울프심) 등도 모두 각기 다른 무게감의 보컬과 연기로 브로드웨이 무대 수준을 입증했다.
다만 토니상 수상 배우인 맷 도일이 보여준 개츠비는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을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짐작하게 한다. 원작 소설이 출간 당시에는 혹평받다가 작가 피츠제럴드 사후에야 널리 재평가된 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성격과 행보도 한몫했다. 출간 당시 뉴요커는 개츠비를 두고 “상당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혹평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1926년 첫 무성영화 이후 여러 편의 ‘위대한 개츠비’에선 말수 적고 침울한 갱스터에서 완벽한 매너의 신사, 자기 합리화에 능하나 불안해하는 사기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만들어져 호불호가 엇갈렸다. 맷 도일이 서울에서 만들어낸 개츠비의 경우 지고지순한 첫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몽상가로서 평가를 받을 듯하다. 서울 GS아트센터에서 11월 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