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부심/ 앨리 러셀 혹실드/ 이종민 옮김/ 어크로스/ 2만3000원
한때 민주당의 든든한 지지기반이었던 미국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은 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로 돌아섰을까. 미국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켄터키주 파이크빌에서 7년에 걸쳐 수행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부상한 우파의 정치 심리를 추적했다.
파이크빌은 ‘힐빌리의 노래’로 잘 알려진 애팔래치아산맥의 탄광 도시. 미국 내 백인 비율이 가장 높고, 두 번째로 가난한 선거구이기도 하다. 30년 전만 해도 광산업을 기반으로 번성했던 이곳은 광산노조가 민주당과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중도 정치의 심장부였다. 산업 쇠퇴와 함께 몰락을 겪은 이후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80% 이상 주민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대표적인 보수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저자는 변화의 원인을 이념이 아닌 ‘감정’에서 찾는다. 일자리 상실, 극심한 빈곤,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중독 등 복합적 위기는 주민들에게 깊은 수치심을 남겼다. 한때 “우리가 미국에 불을 밝힌다”고 자부하던 이들의 자존심은 꺾였고, 모든 고난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문화는 이들을 더 깊은 수치심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