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 노 모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해진 극의 3요소 ‘배우·관객·무대’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작품이다. 특징은 ‘압도적인 리얼(현실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스릴러 거장 히치콕의 누아르 풍으로 재해석한 서사는 비중이 작다. 압도적 현실감이 느껴지는 의문의 공간을 마치 스릴러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펴 나가는 체험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먼지 한 톨’까지 신경 썼다는 제작사 설명만큼 모든 공간과 그 속 물체는 ‘디테일(섬세함)’이 살아있다. 철저한 체크인 과정을 거친 후 어둑한 복도를 통과해서 공연장에 입장한 순간부터 느껴지는 공간향마저 인상적이다. 굉음 수준이나 찌그러짐 없이 들리는 배경음악은 희뿌연 공기를 뒤흔들고 정교하게 설계된 조명은 이를 비춘다. 모든 것이 합쳐진 ‘슬립 노 모어’ 미장센의 ‘리얼함’은 왜 이 작품이 2003년 런던 초연 이래 ‘이머시브 시어터’의 선도적 작품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는지 실감케 한다.
역대급으로 조성된 몰입형 공간의 주인공은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를 필두로 다양한 배역을 맡은 23인의 배우들이다. 3시간 동안 각자 맡은 역할을 한 시간에 한 번씩 총 3회 선보인다. 관객은 100개가 넘는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기승전결을 만들어야 한다. 둘이 손잡고 들어가도 여러 선택의 분기점에서 결국 홀로 돌아다니며 나만의 감상을 끝마친 후 극장 밖에서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게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