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널목에서 보행자 신호 대기 중인 기자를 옆의 남성이 신기한 듯 흘끗 쳐다봤다. 햇빛 가리려 검은 우양산을 활짝 편 기자에게 흥미를 느낀 듯했다. 바뀐 신호등에 길을 건너자 이번에는 호기심 가득한 중년 남성 시선이 맞은편에서 날아왔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먹자골목에 접어들자 기자와 비슷한 또래의 양산 쓴 남성이 눈에 띄었다. 내리쬐는 햇볕에도 양산이 선사한 그늘에 시원한 듯 평온한 표정이다.
◆6년 전 뜸했지만…‘남자가 무슨 양산’ 관념 깨졌다
2019년 ‘양산 쓰는 남성이 언제쯤 자주 보일까’를 주제로 취재한 적 있다. 어느 누리꾼의 양산 구매 고민 글에 달린 ‘남자도 더우면 당연히 양산을 쓸 수 있다’는 댓글이 시작이었다.
◆남성 패션 플랫폼에서도 ‘양산’ 판매 늘어
양산을 향한 달라진 시선은 양산 검색량과 판매량 상승 곡선으로 이어졌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지난 6월14일~7월13일 우양산과 양산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0%, 186% 증가했다. 패션 플랫폼 29CM에서도 6월1일~7월13일 암막우산·경량양산·UV차단 양산 등의 검색량과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이상 늘었다.
특히 남성 패션 플랫폼 ‘4910’의 6월1일~7월29일 양산 검색량과 거래액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7%, 954% 증가해 주목된다. 양산이 더 이상 특정 연령대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으며, 남녀노소 사용하는 필수품으로 자리했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밝은 색깔과 화려한 레이스 장식 일색이던 양산에 ‘남성용’ 수식어를 붙이고, 무채색 제품을 다수 내놓는 등 업계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쿠팡에서 ‘남성 양산’ 키워드 검색 후 판매량 기준으로 나열하면 ‘자동 암막 우양산’ 등 묵직한 느낌의 제품이 여럿 나온다. ‘여성 양산’ 검색 시 경쾌한 디자인의 초경량 양산의 결과물과 대조된다. 남성 고객의 취향을 겨냥한 상품 등장이 빚은 결과로 보인다.
◆‘남자가 양산? 그게 어때서’ 다양화의 시대로
전문가들은 여성의 것으로만 여겨지던 양산의 대중화로 볼 수 있다며 달라진 사고가 패션업계의 경계를 무너뜨린 사례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내게 도움 되는 것을 따라가려는 실용주의가 과거 관습을 깬 것”이라며 “젊은 세대 의식변화도 양산 쓰는 남성의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암암리에 만들어졌던 생활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남성도 양산을 쓸 수 있을 만큼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고, 그러한 변화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다양화의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극한 폭염의 지속으로 더위를 피하는 수단으로 양산을 찾는 남성들이 늘었다”며 “미백과 노화 방지 등 피부를 신경 쓰고 눈 건강을 챙기는 등 자기관리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증가해 양산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