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이나 열여섯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 고집대로 크게 맞춘 교복에 비해 내 몸이 하나도 자라지 않았던 어린 날이었다. 길고 묵직한 교복 탓인지 나는 젖은 빨래가 된 기분으로 매일을 보냈다. 햇빛 아래 아무리 오래 두어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축축하고 고단한 기분이었다.
월수금은 하교한 뒤 버스를 타고 영수 학원에 가야 했다. 나는 수업 진도를 거의 따라가지 못했는데, 단과 학원이다 보니 내가 수업을 듣는지 마는지 관심 두는 사람이 없었다. 함수 그래프에 눈코입을 그려 넣으며 대충 시간을 때우다 보면 집에 갈 시간이었다. 어느 금요일, 학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축 처진 채 앉아 있었다. 어깨에서 시작되어 팔꿈치,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던 실들이 불현듯 끊어진 것 같았다. 순식간에 무기력해진 나는 온몸의 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완전히 낯선 공간을 향해 달려 나갔다.
종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아파트 서너 채와 주택들이 몇 몰려 있는 것 외에 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 공터와 들판 사이로 유일하게 뻗은 6차선 도로를 바라보며 나는 망설였다. 그때의 나는 화가 나 있지도, 두렵거나 혼란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서 있자니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불렀다. “얘.” 가던 길을 되돌아온 듯 아주머니는 작게 헐떡이고 있었다. “버스를 잘못 탔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비가 없는 모양이구나.”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커다란 지갑을 끄집어냈다. 지폐 칸에 영수증과 메모지 같은 것이 잔뜩 끼워져 있는 낡은 지갑이었다.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낸 아주머니가 내 손에 그것을 쥐여주며 말했다. “괜찮아, 얘. 저기 길 건너서 버스 한 번만 더 타면 돼. 아까랑 똑같은 거 타고 네가 아는 데까지 도로 가면 되지, 뭘 다 큰 애가 길바닥에서 울고 있니.”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