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세진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7월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여당의 일방적인 주도하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트럼프발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하여 코너에 몰린 우리 기업들에 여당은 기를 불어넣기는커녕 아예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여당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여러 건의 법안을 바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를 9월에 시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상법 개정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도 않다.
미국 회사법상 집중투표제는 소수자에 대한 대표선출권을 부여한다는 정치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이 1861년에 발간한 ‘대의정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자 보호에 소홀하지 않다. 그러나 소수자의 보호가 다수결의 원칙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다수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로 인하여 대주주라 하더라도 이사회 의석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는 국면이 초래될 수 있다. 이처럼 소수 주주들이 대주주의 의사를 배제하고 회사 운영을 좌우한다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이념에 배치된다. 주식회사에서 대주주와 소수 주주 사이의 갈등은 주주총회에서 해결하여야 한다. 만약 행동주의 펀드가 먹튀를 일삼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활용하여 주주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자를 이사로 선임한다면 사실상 대주주와 소수 주주 간의 다툼이 이사회에서도 재현되어 그야말로 회사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미국은 한때 여러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였지만 지금은 소수의 주에서만 강제되고 있을 뿐이다.
주주는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행사를 통하여 자신의 이해와 중대한 관계가 있는 사항에 관여할 수 있다. 주주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권한은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권한이다. 감사위원은 이사로서의 지위를 함께 지니고 있어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미 7월 상법 개정에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가 감사위원 선임을 하는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하여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되었으며 8월 상법 개정에서는 2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분리하여 선출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은 사실상 주주의 이사선임권을 침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분리선임되는 이사의 숫자까지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입법례는 매우 기교적인 것이다 보니 외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