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관련 의혹 등을 수사하는 채해병 특별검사팀(특검 이명현)은 다음 주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긴급구제 등을 기각한 과정을 본격적으로 조사한다. 인권위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처의 실무 책임자들을 불러 당시 상황을 확인할 예정이다.
29일 채해병 특검법을 보면 인권위는 채해병 사망 사건을 은폐하고 무마하는 등 불법행위에 관련된 혐의에 연루돼 있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 당시 해병대 수사단을 이끌었던 박 대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격노’ 이후 ‘윗선’으로부터 조사 결과를 경찰에 넘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강행했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갔다.
이에 군인권센터는 박 대령의 긴급구제와 제3자 진정을 2023년 8월14일 인권위에 제기했다. 군인권보호위원장인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겸 군인권보호관은 5일 전인 같은 달 9일 국방부의 수사개입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지만, 군인권센터가 진정을 제기한 당일 이 전 장관과 통화한 후 입장을 바꿨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후 인권위는 긴급구제와 진정을 차례로 기각했다.
특검은 김 위원이 해당 진정 사건을 전원위원회에 부치지 않고 소위에서 기각한 것이 절차상 위법한 것은 아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군인권보호위원장 신분으로 직권을 남용해 만장일치로 처리되지 못한 제3자 진정 사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 처리해 다른 위원들의 권리 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다.
◆인권보호국장 직무대리·사무총장 소환
특검은 박광우 당시 군 인권보호국장 직무대리를 다음달 1일, 박진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을 다음달 3일 부른다. 두 사람은 모두 참고인 신분이다. 특검팀은 최소 한 차례 인권위 군인권보호국 실무진을 불러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 안건 등을 검토해 결정하면 사무처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김 위원이 입장을 바꾼 시기에 사무처에 지시된 내용이 바뀌었는지, 어떤 식으로 지시가 내려왔는지, 통상적으로 진정 사건을 소위에서 기각하는 것이 적법한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진에게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당시 실무 책임자인 박 직무대리와 박 총장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할 전망이다.
실무 책임자 조사가 끝나면 특검은 군인권위원들을 연달아 부를 계획이다. 군인권위는 상임위원인 김 위원 외에 비상임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 군인권위는 군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하고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당시 인권위 조사관 “인권 침해 맞아”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5월 박 대령 사건을 직접 조사한 인권위 조사관들이 ‘박 대령이 인권 침해를 당한 것이 맞으니 진정 사건을 인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에게는 사건 이첩을 지시할 권한이 없고, 이 지시가 수사 내용의 인권 침해 예방 측면에서도 정당하지 않다고 봤다.
보고서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적법 절차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그 내용에도 채해병 사건을 총괄 지휘하던 피해자(박 대령)가 일련의 과정을 수사에 대한 부당한 외압으로 느꼈을 만한 정황이 상당해 정당한 명령이 될 수 없다고 보인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관들은 채해병 사건을 경찰에 이첩한 박 대령의 행위를 항명으로 보는 것이 부당하며 박 대령이 수사를 받고 기소된 상황이 직업수행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박 대령의 보직해임 처분 취소’, ‘항명죄 공소제기 취소’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김 위원은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통화는 성명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