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의 집합이다. 신체의 표현과 행위에는 겪어온 시간 속 감정과 경험이 새겨져 있고, 두 눈과 입가에는 살아온 시간의 결이 숨 쉰다. 한겹 한겹 접히는 주름에는 마음의 흔적이 새겨지며 지나온 삶이 켜켜이 축적된다.
몸은 정신을 비추는 거울로 성스러운 전당이 될 수도, 버려진 폐허가 될 수도 있다. “몸은 성전(聖殿)이다(The body is a temple)”라는 고린도전서의 핵심 사유는 종교적 맥락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은유로 사용된다. 신체는 단순히 행위를 위한 수단이 아닌, 삶과 경험의 흔적을 담는 성찰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난 존재라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신체’는 미술계에서도 오랜 시간 논의되며 시대와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해 왔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오사카 출신의 시각예술가 시오타 지하루(53)는 벗어날 수 없는 몸을 예술적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이 극복된 장을 펼쳐낸다.
‘The Self in Others(더 셀프 인 아더스)’(2024) 연작은 이러한 낯섦과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해골, 태아, 신체 일부의 형상들이 네모난 박스 안에 실과 비즈로 위태롭게 엮여 있다. 작품에는 선의 감각이 지배적이지만, 강박적으로 엮여 덩어리가 된 선들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비선형적 흐름으로 전환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상자 속에 삶의 격랑을 겪어내는 인간의 운명이 압축되어 있는 듯하다. 작가는 처연하게 남은 뼈와 장기를 반짝이는 비즈와 둥글게 피어난 실로 뒤덮는다. 그것은 생경하게 느껴지는 몸을 익숙하게 만들려는 시도이자, 육체가 담아내는 영혼과 기억, 삶의 아름다움을 경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시오타의 작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은 성물(聖物)이 되고, 낯선 형상들의 진열은 사원 속 제단처럼 숭고하고 제의적인 풍경으로 거듭난다.
◆다시 흙으로
이번 전시는 동명의 설치작 ‘리턴 투 어스(Return to Earth)’(2025)로 귀결된다. 촘촘한 망처럼 엮인 검은 실이 바닥에 쌓인 흙과 맞닿는 풍경이다. 검은 무더기는 삶을 잉태하는 자궁의 형상을 띤 채 흙 속으로 스며들고, 흙에서 피어난 형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시오타의 작업에서 검은색은 붉은색, 흰색과 함께 중심을 이루는 색이다. 여기서 검정은 먹구름처럼 불온한 색이라기보다 흑백사진처럼 시간성이 삭제된 색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소멸과 부패, 소각 후 남은 재를 떠올리며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품은 흙의 개념과도 공명한다. 흙은 시공간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존재론적 상징으로, 인간의 육체가 자연에서 비롯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감을 환기한다. 작가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만물을 품어내는 대지의 모습을 펼쳐냄으로써, 죽음을 끝이 아닌 귀환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검은 망과 흙의 만남은 생과 사, 소멸과 재생,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시각적 풍경을 형성하며, 두려움이 극복된 생명의 흐름으로 전환된다.
◆초월된 몸
시오타에게 육체적 고통과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나아가 신체가 극복된 초월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예술은 신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집착을 정직하게 마주함으로써 도달한 성취이다. 따라서 시오타의 ‘신체성의 극복’은 회피가 아니라 전환이다. 병들고 아팠던 몸은 이제 전쟁터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낸 성스러운 전당이 된다.
시오타가 남긴 신체의 안과 밖의 이미지들은 취약한 인간의 숙명을 넘어선 새로운 영역의 빛을 내비친다.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성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두려움과 희망, 낯섦과 친숙함이 교차하는 무한한 사유의 장을 펼쳐낸다. 의식이 몸을 넘어 흙을 향할 때, 우리는 시오타의 실처럼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