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정의의 기상학적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우리나라에서 정반대의 극한 기상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강원 강릉에서는 108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생활용수가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는 반면 남쪽 광주와 전남 지방에서는 폭우로 인한 도심의 침수와 산사태가 이어졌다. 가뭄-폭우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발생한 복합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강릉 생활용수의 80% 이상 공급하는 오봉저수지는 9월 1일 현재 저수율이 14.6%로 평년(平年) 저수율 72.0% 대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인구 20만여명의 강릉을 작은 도시 국가로 생각한다면 현재 가뭄의 상태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강릉 가뭄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지형효과가 결합된 소위 강수의 ‘그늘 효과(shadow effect)’ 때문이다. 올여름 내내 우리나라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기 하층에서 우리나라 서쪽으로 유입된 습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산을 넘어 하강하면서 건조해져 강릉을 포함하는 영동 지방의 여름 평균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강릉 가뭄의 배경에는 올여름 우리나라에 극단적인 폭염과 열대야를 가져온 거대한 대기 순환인 북태평양 고기압이 있고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에 따른 대기의 이상 흐름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여전히 평년보다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어 안타깝게도 강릉의 가뭄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강릉의 가뭄이 단순히 ‘일시적 자연재해’가 아니라 바로 기후 위기의 한 단면이며 이와 같은 지역적 극한 기상 현상은 이제 강릉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기후 과학자들은 한반도가 전 지구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더워지고 있으며, 폭우와 가뭄의 패턴 역시 불규칙해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참고로 1912년 이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무려 3.6℃ 상승했는데, 이는 지구 평균 상승 폭의 두 배 넘는 수치다. 2024년에 14.5℃라는 사상 최고 평균 기온을 기록했고 올해 그 기록을 다시 경신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한반도에서 극심한 가뭄 발생 빈도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올해 강릉의 가뭄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일상이 되는 시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기후 변화 적응(adaptation)’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및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완화(mitigation) 정책의 더딘 속도를 고려한다면 기후 변화 적응 방안을 범국가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에서 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길로 보인다.
예상욱 한양대 ERICA 교수·해양융합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