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전쟁/ 요한 하리/ 이선주 옮김/ 어크로스/ 2만2000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배경으로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그린 영화 ‘시카리오’는 사실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으로 2015년 개봉 당시 화제를 일으켰다. 공권력은 무기력하고 폭력이 일상인 현실에서, ‘마약상 척결’을 기대하고 작전에 투입된 연방수사국(FBI) 요원은 현실 정치와 개인의 복수로 얼룩진 결말을 마주하고 당혹스러워한다. 마약상 두목 한 명을 제거하는 서사로 완성되던 기존 영화들과 달리 ‘시카리오’는 정부의 암묵적인 용인으로 이뤄지는 마약상 교체를 통해 과연 정의로운 전쟁이 가능하기는 한지, 우리는 정말 이 마약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건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콜롬비아의 전설적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남미 마약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드라마는 에스코바르 제거 이후 더 많은 파벌, 더 치열한 권력 싸움, 더 잔인해진 폭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지금도 수많은 국가에서 이런 ‘마약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는 걸까. 이 싸움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우리가 없애려는 것은 과연 사람인가 아니면 시스템인가.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한 하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마약 문제에 접근해왔다”는 확신을 갖고 문제에 접근한다.
저자는 마약과 폭력이 단순히 범죄자들의 타고난 악함 때문이 아니라, 정책의 실패, 시스템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마약 사용자, 중독자, 밀매자들이 어떻게 ‘적’으로 만들어졌는지 100년에 걸친 역사를 추적한다. 그 시작은 1930년대 미국이다. 미국 연방마약국(FBN)의 초대 국장이었던 해리 앤슬링거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는 마약에 대한 공포를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특히 마리화나가 흑인과 히스패닉 이민자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종주의적 혐오를 부추겼다. 그는 “마리화나는 흑인이 백인 여성을 유혹하게 만든다”는 식의 주장을 공공연히 펼쳤고,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중독자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로 만들었다.
저자는 길거리에서 만난 마약 중독자들을 통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라스베이거스 거리에서 만난 레이철은 길거리 성매매를 하며 살아가는 헤로인 중독자지만, 그에게 마약은 ‘쾌락’의 목적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학대, 성폭력, 사회적 고립, 경제적 빈곤이라는 복합적인 상처를 억누르기 위한 ‘진통제’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