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플 때 기댈 든든한 언덕이 있다. 바로 건강보험이다. 올해 건보 총지출은 105조2000억원으로 예상되는데, 그만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반면 건보 재정은 위태롭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3차 장기재정전망(2025~65년)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어서 적자로 돌아선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작년 말 현재 건보 누적 준비금이 3.8개월분 급여비 지출액에 해당하는 29조7221억원으로 역대 최대에 달한다며 당장 재정이 고갈될 우려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8년 후인 2033년이면 준비금마저 바닥난다는 게 장기재정전망의 내용이고 보면 지출을 효율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건보 재정은 초고령사회를 맞아 구조적인 적자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령 인구 증가로 의료비 지출은 가파르게 느는 데 반해 재정의 주요 수입원인 건보료를 부담하는 근로 인구는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탓이다. 전년 대비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2021년 10.8%, 2022년 10.6%, 2023년 6.5%, 2024년 3.0%로 둔화 양상이다. 같은 기간 보험급여비 증가율은 ‘5.4%→9.8%→6.8%→7.3%’로 수입을 추월했다.
이런 상황에도 제도적인 미비 탓에 건보 재정이 줄줄 새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대표적으로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사 명의만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은 오랫동안 재정을 좀먹어왔다. 과잉·불법 진료를 일삼은 이들 기관에 지난 14년간 부과된 부당이득 환수 결정액은 3조4000억원이지만, 징수는 7%에도 못 미친다. 경찰 수사 기간이 평균 11개월에 달하다 보니 불법 재산 대부분이 은닉된 탓이라고 한다. 그간 건보료를 징수하는 건강보험공단에 제한된 범위의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도입해 불법 재산을 신속하게 동결·환수하자는 목소리도 컸으나 의료계의 반대 등에 번번이 좌절됐었다.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2027년까지 특사경 도입을 못 박았는데, 의·정 갈등으로 틀어졌던 의사단체 등의 눈치를 보다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