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 지구를 감독할 새로운 국제기구인 일명 ‘평화이사회’(Board of Peace) 창설 구상을 내놓은 가운데 영국의 정계 원로 토니 블레어(72) 전 총리의 역할에 눈길이 쏠린다. 트럼프가 직접 의장을 맡기로 한 평화이사회의 첫번째 이사 후보로 블레어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총리 시절 미국을 이끈 조지 W 부시 대통령(2001년 1월∼2009년 1월 재임)의 온갖 요구 사항을 척척 들어주며 찰떡 호흡을 과시해 ‘부시의 푸들’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29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가자 지구 평화 계획을 발표했다. 가자 지구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2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이는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 이상을 인질로 붙잡아 가자 지구로 끌고 가는 테러를 저지른 것에서 비롯했다. 보복을 다짐한 이스라엘이 군대를 동원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음에 따라 가자 지구에선 현재까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6만6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가 네타냐후와 협의한 끝에 마련한 가자 지구 평화 계획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마스는 생존해 있는 인질 20명 전원과 사망한 인질들의 시신을 72시간 안에 이스라엘에 인도해야 한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붙잡아 구금한 가자 지구 주민들 가운데 종신형 수감자 250명을 비롯해 2000명 가까운 인원을 석방한다.
이후 가자 지구는 다국적군이 접수해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고 주민들에게 각종 인도적 지원도 제공하게 된다. 트럼프가 이끌 평화이사회 산하에 철저히 기술적이고 비정치적인 이른바 ‘팔레스타인 위원회’(Palestinian committee)를 둬 정식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과도기 동안 임시로 가자 지구의 행정을 맡긴다. 팔레스타인 위원회 그리고 장차 출범한 팔레스타인 국가에서 하마스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배제된다.
이 같은 트럼프의 구상에 대해 블레어는 “지난 2년 동안의 전쟁과 비참함, 그리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가자 지구에 즉각적인 구호를 제공하며, 주민들에게 더 밝고 나은 미래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담하고 영리한 계획”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결단력, 헌신에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블레어는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며 총리에 올라 2007년까지 무려 10년간 집권했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참사가 벌어진 뒤 그는 당시 부시 행정부와 긴밀히 공조하며 국제 테러 조직에 맞서 싸웠다.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블레어를 두고 일각에선 ‘부시의 푸들’이란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정계 은퇴 후 그는 증동 평화에 관심을 갖고 미국, 유럽연합(EU), 유엔은 물론 러시아와도 협력하며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관련해 블레어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적극 지지하며 그 전제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경제 발전 필요성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