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란 노랫말처럼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계절. 하늘은 높고, 바람은 기분 좋게 선선하고, 한여름 폭염 속에 잊고 지냈던 내밀한 쓸쓸함은 단풍 들 준비로 바쁜,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계절. 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대신 작가들이 쓴 편지를 “그대가 되어”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예전에 읽었던 편지글이 담긴 책들을 책꽂이에서 몇 권 뽑아낸다.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가 1946~1959년 주고받은 편지 묶음집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마음의숲), ‘열화당’에서 나온 ‘어떤 그림-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그리고 폴 오스터와 존 쿳시가 3년간 주고받은 편지 ‘디어 존, 디어 폴’(열린책들)을.
연애편지글들은 일부러 배제했다. 그보다는 시대에 대한 연민과 작품들에 관한 고뇌와 깊은 우정이 담긴 글들이 요즘 내겐 더 절실하므로. 예전엔 문학적 쓸모 때문에 유명 작가들의 편지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었지만, 지금은 그 너머, 그들의 삶과 문학에 스며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깊은 우정이 그리워 그들을 찾아 읽는다. 그들처럼 나도 즐겁고 치열하게 잘 늙어가기 위해.
그중에서도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는 짧고 간결함에도 문장 하나하나에 배인 인간미와 겸손, 깍듯하면서도 최고의 미덕인 깊은 우정이 담겨 있어 사람이 그리운 내 방을 읽는 내내 환하고 포근하게 밝혀준다. 보르헤스가 말한 “우정에는 어떤 마술적인 게, 일종의 마력 같은 게 있고, 우정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열정이다”라는 그 우정으로! 하여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우정을 갖고 싶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게 한다. 오, 디어 카뮈, 디어 샤르!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