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성남시의료원 운명은?…공공의료 원리주의 vs 수정주의 충돌 [오상도의 경기유랑]

李 대통령, 성남시장 1호 공약…주민 발의 첫 공공의료원 ‘상징성’
‘잠자는’ 대학병원 위탁안…신상진 시장, 정은경 장관에 면담 요청
시민단체 “시의료원 공공성 강화” vs 성남시 “자생하는 길 요원”
국정 책임자 ‘의지’ 따라 생존 형태 달라질 듯…정치논란으로 비화

공공의료를 둘러싼 효율성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늘 부족하고 적자를 이어가는 운영이지만 공공의료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적잖기 때문이다. 상반된 두 시각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은 국민주권정부의 과제로 남았다. 

 

논란의 진앙은 표류하는 성남시의료원이다. 2년 전 경기 성남시가 발표한 대학병원 위탁 운영안이 여전히 보건복지부 책상 서랍 속에 잠자면서 시장이 직접 해법 찾기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인 올해 6월 성남시의료원 앞에 있는 주민교회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30일 경기 성남시에 따르면 의사 출신인 신상진 시장은 최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시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안 신속 승인을 거듭 촉구하는 서한문을 보냈다.

 

시가 이날 공개한 서한문에는 정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 1년9개월간 미뤄진 결정…509병상 공공병원

 

성남시의료원은 2020년 7월 전국 처음으로 주민 발의로 건립이 추진되면서 500병상 규모로 건립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시장 당시 1호 공약일 만큼 상징성이 강하다.

성남시의료원 전경. 성남시 제공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시범 운영됐고, 이후 공식 개원했으나 경영 악화로 어려움이 따랐다. 여전히 의료진 확보가 힘들었고 진료 공백, 의료손실 등으로 대학병원 위탁 운영안이 힘을 얻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이곳의 연간 손실은 400억~500억원대로 시는 운영을 위해 2022년 265억원, 2023년 215억원, 2024년 413억원을 쏟아부었다. 올해에는 484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시는 대학병원 위탁안의 이유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과 취약계층 의료사업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성남지역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성남시의료원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역할을 했으나 윤석열 정부 당시 운영지원이 축소돼 어려움이 따랐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들은 코로나19 전담병원, 치료가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치과 진료, 발달장애인을 위한 행동발달증진센터,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 등 성남시의료원이 공공병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

 

성남시의료원 출범을 정치 입문 동기로 내세우는 이 대통령 역시 공공의료의 책임을 강조한다. 대선 후보 당시인 올해 6월 성남시의료원 앞에 있는 주민교회를 방문해 시민단체 측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 공공의료 vs 경영 효율화 논란 재점화

 

이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면서 복지부 역시 성남시의 민간위탁안에 쉽게 찬성하기 어려운 입장이 됐다. 아울러 민간위탁을 위해선 기존 시의료원 의료진과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예상돼 험로가 예상된다.

2023년 11월 성남시의료원 대학병원 위탁안을 발표하는 신상진 성남시장. 성남시 제공

이를 의식한 듯 신 시장은 복지부장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과 공공보건의료사업 확대·강화를 위해 성남시의료원 대학병원 위탁운영 승인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복지부로부터 승인 여부가 통보되지 않아 509병상 규모 공공병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남시의료원이 지역 상황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단순한 재정지원이 아닌 위탁운영 승인이라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장관님과 면담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신 시장은 시의료원에 4785억원의 시 예산이 투입됐지만 근본적 체질 개선이 되지 않아 자생의 길은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시는 2023년 11월 복지부에 대학병원 위탁운영 승인을 요청했다. 복지부는 승인 기준·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9개월간 결정을 미뤄왔다.

 

복지부는 성남시의료원을 서울의료원과 함께 ‘다층 진료기능 허브’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성남시는 1977년 개원해 전문의 279명과 전공의 100여명을 확보한 서울의료원과 인력 충원조차 쉽지 않은 성남시의료원은 애초부터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문. 성남시 제공

사실 공공의료의 효율성 논란과 재정 적자는 성남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대다수 공공의료 시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161억원, 제주는 151억원의 차입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역시 공공의료 운영을 위해 도의회에 지난해 162억원의 2025년도 예산을 요청했으나, 이 중 86억원이 삭감됐다.

 

공공의료의 가치를 지키는 과정에서 ‘방법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성남시의료원은 앞으로도 잦은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라이프’의 극 중 흉부외과 의사 주경문(유재명 분)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자신이 일하는 종합병원의 모든 의사가 모인 자리에서, 경남 토박이인 자신이 나고 자라고 공부한 김해의 한 공공의료원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013년에 그곳을 떴습니다. 160명의 환자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전 의료기관이 파괴되는 걸 봤습니다. 수만 개의 댓글도 봤습니다. ‘혈세 낭비’, 어마어마한 적자를 지적하면서 불친절하고 낡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