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이 되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쏟아진다. 집안 어른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어색함이 흐른다. 입을 떼는 건 보통 어른의 몫이다. “그래, 다니는 일은 할 만하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1년에 많아야 두 번 보는 어른들께 나도 모르겠는 나의 인생 계획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추석 밥상머리에 정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이재명이… 윤석열이… 식사 자리는 불편해진다. 그쯤 되면 본전이 생각난다. 왔다 갔다 차비에, 시간에, 소모되는 체력과 정신력… 명절이니 가족을 보러 내려간다는 익숙한 문장은 의무감으로, 부담으로 바뀐다.
추석이란 본디 한 해 농사의 결과물을 얻기 직전, 조상신들께 올해는 풍년이 되기를 바란다며 제물을 바치는 행사였다. 말하자면 우리는 예로부터 집안 어른들께 감사와 기원을 올려왔던 것이다. 불과 몇 세대 전, 3대가 모여 집단으로 농사를 지어가며 살던 시대에는 같은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섭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집안 어른’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가족의 윗세대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이끌고 조언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니, 내가 집안 어른인데 이런 말도 못 하나?’라는 말은 그 시절을 살아온 어른들이기에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반면 내가 자란 세대는 대부분 가족 구성원이 4명인 가정에서 커나갔다. 집안 어른이 맡아오던, 삶의 방향을 이끌고 조언하는 역할은 학교, 학원 선생님들이 대신해갔다. 내 삶에 상관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추석이 되면 집안 어른이라는 분께서 나타나 불쑥 내 삶에 상관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충돌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