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2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3500 고지를 밟았다. 미 연방 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여파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오히려 커진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픈AI의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플랫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반도체 대형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IBK기업은행이 지난 5년 반 동안 기술금융대출과 관련해 부실처리한 금액이 6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신용평가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기술금융대출 잔액이 늘고 있지만, 부실처리 금액도 같이 늘어나는 만큼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편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지난달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세가 1조3000억원에 그치며 올해 들어 가장 적게 증가했다. 그러나 잇따른 대출 규제의 부작용으로 수도권 주택시장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어 시장에선 정부의 공급 대책이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훈풍에 코스피 첫 3500 돌파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69.65포인트(2.02%) 오른 3525.48로 출발했다. 코스피가 3500선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스피는 장중 최고점을 계속 경신해 오전 11시36분 3565.96까지 고점을 높인 후 3549.21로 장을 마감했다. 종전 역대 최고점은 종가 기준 지난달 23일 3486.19였고, 장중 기준으로는 지난달 24일 3497.95였다.
이날 외국인이 3조1279억원을 순매수하며 코스피 상승을 이끌었다.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3조718억원, 677억원을 순매도했다. 긴 연휴를 앞두고 코스피가 고점이라고 판단한 개인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픈AI의 700조원 규모 프로젝트 참여 기대로 대형 반도체 주들이 급등했다. SK하이닉스는 종가 기준 전일 대비 9.86% 오른 39만5500원, 삼성전자는 3.49% 오른 8만9000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장중 처음으로 ‘40만닉스’에 올라서고, 삼성전자는 2021년 1월15일(9만6800원) 이후 4년9개월 만에 ‘9만전자’ 타이틀을 탈환하기도 했다.
앞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서울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오픈AI ‘스타게이트 이니셔티브’ 일환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전날 미 연방 정부의 셧다운 파장이 오히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를 높이면서 미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 마감한 것도 코스피 불장의 연료로 작용했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8.91포인트(1.05%) 상승한 854.25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670억원, 123억원을 순매수했으며 개인은 626억원 순매도했다.
◆기업은행, 기술금융대출 부실처리 5년간 6.5조원 달해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이 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기술금융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124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10조원 늘었다. 은행권 기술금융대출 점유율은 38%에서 40.6%로 올라가며 1위를 유지했다. 기술금융대출은 담보력이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부터 금융당국과 전 은행권이 공동으로 추진해 온 정책금융 프로그램이다. 기업은행이 기술신용평가 담당 6개 기술신용평가기관(나이스디앤비·NICE평가정보·서울평가정보·이크레더블·한국기술신용평가·한국평가데이터)에 의뢰한 평가 수수료만 2023년 기준 139억95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의 기술금융 대출과 함께 부실처리액도 덩달아 증가했다.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기업은행의 기술금융대출 부실처리액은 총 6조5579억원으로 집계됐다. 부실처리액은 2020년 7319억원에서 매년 늘어 지난해엔 1조8360억원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올해 7월 말 기준 이미 9338억원을 기록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기술신용평가 제도를 개선했음에도 부실한 기업에도 무분별한 대출이 이뤄져 부실처리되는 금액이 매년 늘고 있다”며 “부실처리 금액을 줄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주담대 증가폭 올 들어 최소…“대출 확 줄어”
한편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주담대 잔액은 608조9848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3135억원 늘며 지난해 10월(1조923억원) 이후 최소 증가폭을 나타냈다. 지난 8월 주담대가 3조7012억원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새 증가폭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764조949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조1964억원 늘며 지난 1월(-4762억원) 이후 8개월 만에 최소 증가폭을 나타냈다. 전세대출은 전월 대비 344억원, 신용대출도 2711억원 감소했다.
이는 6·27 가계대출 규제, 9·7 부동산 대책 등 대출 규제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세를 낀 ‘갭 투자’ 매매가 위축되면서 전세 시장의 공급 부족으로 ‘전세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날 부동산 중개∙분석업체 집토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 7∙8월 서울 아파트 신규 전세 계약은 1만210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계약 건수(1만7396건) 대비 30.4% 급감했다. 주택담보대출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가 신설되는 등 규제 여파로 분석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전월 대비 2.2포인트 오른 154.2로, 2021년 10월(162.2)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100을 넘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많음을 의미한다. 금리인하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의 월세화’ 흐름도 현실화됐다. 지난 7∼8월 서울 아파트 월세 계약은 1만718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6282건) 대비 5.5% 증가했다. 이재윤 집토스 대표는 “6·27 대책이 갭 투자를 위축시킨 효과가 전세 시장의 공급 부족과 신규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 증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한 별도의 공급 대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시장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