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무대에서 인도와 중국은 개발도상국 국가들을 상대로 각각 별도의 외교 무대를 마련하며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도국과 신흥국을 통칭) 리더십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특별대우 지위를 포기하며 ‘책임 있는 대국’ 이미지를 부각했고, 인도는 민주주의적 대안과 남남(南南) 협력(개발도상국 간의 협력)을 앞세우며 차별화에 나섰다.
두 나라 모두 세계 1·2위의 인구 대국이자 신흥 강국으로 개발도상국 대표를 자처해왔지만 이번 총회에서의 행보는 글로벌 사우스 내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함을 시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집권 이후 세계 무역과 다자주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양국이 공동 전선을 펼 것으로 예상됐지만 병행 외교를 통한 영향력 경쟁 역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엔 총회서 中·인도 모두 개도국 모아
◆아직은 中 원조 규모에 못 미치는 인도
중국과 인도의 대결은 브릭스(BRICS)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 구도에서도 이어진다. 중국은 지난해 브릭스에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을 포함하며 세력을 확장했지만, 인도는 확대 속도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인도는 쿼드를 통해 미국, 일본, 호주와 협력하며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의 전략은 중국식 개발모델과 선을 긋는다. 인도는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중국의 권위주의 모델과 차별화하면서 남남 무역·투자·기술 협력을 확대해 신흥국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국가가 서방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인도가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인도는 2023년 1월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주도하며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1947년 독립 직후 반식민주의와 비동맹 노선을 바탕으로 제3세계 연대를 이끌었던 전통을 계승하면서 민주주의를 핵심 브랜드로 삼은 셈이다.
인도는 1964년 시작된 ITEC(인도 기술·경제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 강화 연수와 기술 지원을 제공해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IDEAS(신용한도 제공), 인도·유엔 개발 파트너십 기금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확충했다. 최근에는 사이버 안보와 에너지 인프라, 의약품 지원까지 범위를 넓히며 개발협력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인도가 민주주의와 남남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국과의 물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치 외교로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균형 있고 지속 가능한 경제 교류를 위해 남남 무역, 투자, 기술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인도가 자금력 대신 네트워크와 가치 공유를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분석에 따르면 인도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중국의 약 2.5%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도·아프리카 포럼 서밋’도 2015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정치적 수사와 실제 자금 투입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중국은 아프리카협력포럼(FOCAC),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WTO 개혁을 선언한 이번 조치 역시 중국이 단순히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벗어나 국제 규범 형성에 참여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 두 나라가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성을 자처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어느 한쪽에 줄서기보다 양측 모두를 활용하는 실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인도와 중국의 경쟁은 협력보다는 차별화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서방 ‘중국 견제’에 인도 중요성 여전
미국 등 서방의 시각에서 인도는 ‘중국 견제의 축’으로 중요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엔 총회 기간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인도는 인도태평양에서 핵심 파트너이며, 인도가 바로 인도태평양의 ‘인도’”라고 전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쿼드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했고, 올가을 인도에서 쿼드 정상회의 개최가 예정돼 있다.
미국과 인도의 관계가 최근 서먹해지긴 했다. 지난 8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의 참석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빌미 삼아 인도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양국 간 무역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파키스탄과 관계 복원을 시도하면서 인도의 불만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는 5월 인도·파키스탄 충돌 당시 자신이 관세 압박을 통해 휴전을 중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인도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인도를 중국 견제의 축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국무부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를 민주주의적 균형추로 보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외신은 “인도는 미국과 미묘한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한편 글로벌 사우스 무대에서는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