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단순 기술을 넘어 국가 경쟁력이자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특정 국가와 거대 기업이 기술을 독점하는 ‘AI 헤게모니(패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중 양국이 AI 패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특정 문화와 언어에 편중되지 않은 ‘소버린(주권) AI’를 확보하고 서로 연대하며 새로운 AI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정주환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계일보 주최 ‘2025 세계아세안포럼’에서 ‘AI 주권 시대의 연대와 기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기술 종속 심화… 소버린 AI 생태계 구축해야”
정 이사는 기술 종속을 유발하는 핵심 요소로 반도체와 기술 라이선스도 언급했다. AI 학습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미국의 엔비디아가 올해 1분기 기준 전 세계 시장의 92%를 장악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수출 통제라는 강력한 카드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다. 또 미·중 AI 서비스 기업들은 오픈소스였던 자사 서비스를 하루아침에 유료화하거나 특정 국가에서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정 이사는 “(AI 패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국가에서 운영할 수 있는 소버린 AI 모델에 대한 역량 또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이사가 말하는 소버린 AI는 한 국가가 자국의 데이터와 가치관을 담은 AI 모델을 직접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정 이사는 “각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AI 관련) 인프라나 데이터, 네트워킹 부분까지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AI 서비스 △데이터 △슈퍼컴퓨팅 인프라 및 클라우드 서비스 △데이터센터 등이 제대로 갖춰져야 소버린 AI가 잘 구축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자립 진행 중… 네이버 역할 중요”
정 이사는 소버린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네이버의 역할을 소개했다.
네이버는 검색, 쇼핑, 페이, 웹툰 등 방대한 범위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대한민국 인구의 94% 이상을 이용자로 확보한 상태다. 양질의 한국적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뜻이다. 이를 기반으로 오픈AI, 화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된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로 평가받고 있다.
정 이사는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의 기술 자립 노력이 진행 중임을 소개했다. 일례로 네이버는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극복하기 위해 인텔과 협력하며 AI 추론 비용을 90%까지 절감했다. 정 이사는 “국내에서 리벨리온, 퓨리오사AI와 같은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자체적인 기술 기반을 담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AI 학습을 위한 GPU는 엔비디아를 대체할 수 없겠지만, AI 가속기 측면에선 한국계 기업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네이버와 삼성이 진행 중인 소버린 AI 협업 사례도 소개했다. 정 이사는 “(양사가) 정부 기관들이 AI 서비스를 만들 때 활용하는 인프라를 올해 말까지 준비하려고 한다. AI 모델을 잘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기본적인 플랫폼”이라며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시도하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앞서 네이버클라우드와 삼성SDS는 공무원이 보안 걱정 없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정부 전용 플랫폼 구축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