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조3808억원대 재산분할을 명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을 파기환송한 데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의 출처가 불법 뇌물에 해당해 분할 대상 재산으로 삼을 수 없다는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아울러 최 회장이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이나 SK그룹에 반납한 급여 등은 부부공동재산 형성·유지를 위한 처분이었으므로 분할 대상 재산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주요 근거가 됐다.
◆“노태우 300억원 출처는 뇌물… 법적 보호 가치 없어”
16일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심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뇌물 수수라는 불법행위로 형성된 자금인 점에 초점을 뒀다. 이를 토대로 노 전 대통령의 지원이 최 회장의 재산 유지·증가에 영향을 줬더라도 법적 보호가치가 없어 노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해 5월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2부(당시 재판장 김시철)는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SK 회장(최 회장의 부친)에게 지원한 300억원 중 상당 부분이 태평양증권 인수, 이동통신사업 진출 등 SK그룹의 사업자금으로 사용되거나 최 회장에게 상속되는 등 부부공동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금이 이전된 1991년쯤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시행되기 전이어서 300억원을 불법원인급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給與)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한 민법 746조를 들어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에서도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청구를 배제한 입법 취지는 고려돼야 한다”며 2심 판단을 깼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서의 노 관장의 기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746조의 취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친인척 증여 주식도 분할 대상 아냐”
대법원은 항소심과 달리 최 회장이 친인척 18명에게 증여한 SK(주) 주식과 SK그룹에 반납한 급여 등도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의 각 재산 처분은 원심이 인정한 혼인관계 파탄일인 2019년 12월4일 이전에 이루어졌고, 원고가 SK그룹 경영자로서 안정적인 기업 경영권 내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행한 것으로서 원고 명의 SK㈜ 주식을 비롯한 부부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혼인 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적극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