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행정조교로 근무한 적이 있다. 서류 제출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몇몇 중국 학생들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선생님, 입학 서류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이틀만 늦게 내면 안 될까요?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난처해졌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절박함을 이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의 규정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 접수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마감을 연장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국인 학생에게 “죄송하지만,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상황은 학부 수업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나는 현재 중국인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조교를 맡고 있는데, 학생 중에는 한국어가 부족해서 출석 체크 방식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제법 있다. 몇 번 결석 처리가 되자 한 학생이 담당 교수님께 “제가 잘 몰라서 출석 체크를 못 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학생은 나를 찾아와 매우 속상하고 자신이 무시당한 기분이 든다고 불평했다.
중국인은 “한 번 상의해 보자”, “조금만 융통성 있게 처리해 달라”라는 말로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익숙하다. 이 말 아래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가 깔려 있다. 중국인은 제도는 협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며 사람 사이의 정이 제도의 틈을 메워 준다고 믿는다. “한 번 상의하자”는 표현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호다. 그것은 체면을 세우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중국식 언어 습관이다.
탕자자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