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지능/ 앵거스 플레처/ 김효정 옮김/ 인플루엔셜/ 2만1000원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손쉽게 언제나 원하는 정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이러한 타자에 의한 정답이 넘쳐날수록 추구해야 할 방향은 흐려지고, 분석이 정교할수록 결단은 더 어려워진다고 호소한다. AI 만능시대라 논리와 데이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문제는 갈수록 복잡하고 모호해지고 있다.
미국의 인지과학자인 저자는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에서 이 모순의 이유를 “논리에 갇힌 인간의 두뇌”에서 찾는다. 그가 이러한 인간의 문제를 포착한 곳은 미 육군 특수부대였다. 신병들은 높은 IQ와 뛰어난 분석력을 갖추었지만, 변수가 많은 실제 상황 앞에서 판단을 주저하고 쉽게 흔들렸다. 한 지휘관은 “그들은 수학 문제는 잘 푸는데, 인생 문제는 풀 줄 모른다”고 전한다. 지식 중심 교육이 강화될수록, 불확실성과 혼란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을 통해 확인했다.
저자는 이 특수부대와 공동 연구로 AI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인간의 태생적 능력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유지능’이다. 고유지능은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생존을 위해 길러온 원천적 사고 능력이다. 문제는 현대 교육과 조직 문화가 이 능력을 약화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인간의 고유한 의사결정 능력인 ‘고유지능’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필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AI의 데이터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이 고유지능의 4가지 핵심으로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을 꼽는다.
그 첫 번째가 직관이다. 저자는 이를 “예외를 포착하는 눈”이라고 말한다. 직관은 기존의 규칙 사이에서 ‘예외적 정보’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대표적인 사례의 인물이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미술 교육의 정석이었던 색채 이론을 기존 방식대로 따르지 않았다. 고흐는 사람, 사물, 공간에서 정리된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묘한 대비와 감정의 진동을 포착했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때 고흐는 색채론에서 금기시된 노랑과 파랑을 과감하게 충돌시켰다. 규칙대로라면 부조화가 발생해야 했다. 그러나 고흐는 하늘이 가진 불안정한 아름다움, 삶이 가진 흔들리는 에너지를 색의 ‘예외’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은 인간 내면의 격렬한 감정을 완벽히 시각화하며, 기존 미술이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혔다. 이같이 직관은 잡음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읽어내는 힘이자 데이터가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