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은 인재 성장 주기와 R&D 전 주기를 모두 강화하는 데 주력한 '패키지형' 대책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의 천인계획 등 기술패권 경쟁 심화에 따른 전 세계 인재 영입 전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강력한 유인책이 나오지 않고, 구체적인 게 없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정부의 대책이 너무 느긋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 연구자 안정적 지원에 방점…현장 목소리 반영 주력
◇ "현실적 처우 생각해야"…혁신적 대안은 없다 비판도
다만 수많은 정책이 나열되면서도 과학기술계 유인을 위한 강력한 '한 방'은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학기술계의 전반적 처우를 강화했지만, 의대 쏠림 등에서도 문제로 지목됐던 처우 역전이 일어나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라는 비판이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보고회에서도 이공계 유인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헬스케어 스타트업 이너시아의 김효이 대표는 "학생들에게 과학자가 좋은 거라고 해봐야 어떻게 돈 벌지 생각하면서 다닐 수밖에 없다"며 "과학자들이 나중에 잘 되는 세상 만들려면 산업계가 부흥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외 우수·신진 연구자 2천명 유치의 경우 지난 8월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브레인 투 코리아' 프로그램에서 수치와 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미국 인재 이탈에 따라 프랑스 정부가 1억 유로(1천682억원) 이상 투자를 통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강력한 인재 유치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은 이 중 70%를 해외에 나간 국내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데 투입하겠다는 목표라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또 초중등 단계 수학·과학 저변 확대, 첨단 분야 대학 전임교원 신규채용 확대 등 교육부 같은 관계부처 협력이 필요한 내용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공개된 내용으로는 혁신적인 대책은 없어 보인다"며 "처음 논의할 때는 혁신적인 안이 많았는데 다른 부처 회람을 거치면서 빠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내달 열릴 '과학기술 인공지능(AI) 장관회의'에서 구체적인 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과기계 우대 문화 개선이 본질…대책 쏠림도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가과학자, 평가체계 개편 등 체제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과학기술계를 우대하는 문화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부터 시작해 생겼다 없어진 상이 이미 수없이 많다"며 이미 여러 상이 많은데도 과학기술인 사기 진작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전철을 반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평가 체계에 대해서도 "과학계가 평가를 어떻게 인식하고 시행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데, 지금의 평가는 어떻게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하던 평가의 연장선"이라며 "실패도 미화시키기 시작하면 과학기술 정책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R&D 성과 부족의 원인은 평가시스템뿐 아니라 세부적인 목표를 과도하게 정한 하향식 과제 구조에도 있다"며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 환경에서는 전략 분야라도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미들업 방식의 유연한 연구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책 대부분이 과학기술원과 지역 거점대학에 집중돼 실제 이공계 연구를 지탱하고 있는 주요 대학들에 대한 지원책은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주요 종합대학들은 교육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과기정통부의 과기원 지원 정책 틈바구니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과학기술 인재들이 과학기술원에만 있지 않고, 지역 대학 살리기만이 과학이 다시 도약하는 길이 아닐 텐데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 급여를 올리는 것은 대찬성이지만 연구자가 연구예산 관련 얼마나 많이 고민하는지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인건비 올리라는 국가의 선언만 내려질까 걱정이다. 사실 기숙사 지원이 더 중요하고, 인프라 확충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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