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최초의 도시빈민 투쟁 ‘광주대단지 사건’…李 대통령-金 지사의 꿈이 무르익다 [오상도의 경기유랑]

1970년대 강제이주 천막촌 거주지에서 소년공·고학생 생활
2022년 대선후보 단일화 ‘접점’…봉기는 성남시 출범 계기
옛터 자활센터 방문한 김 지사 “상전벽해(桑田碧海)” 탄성
봉사활동 하며 초심 다잡아…‘블루밍 세탁소’ 등 사업 확대

1971년 8월10일 당시 경기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현 성남시 중원·수정구, 광주시 남한산성면)에선 대규모 시민 봉기가 일어납니다. 

 

1971년 8월10일 당시 경기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중원·수정구, 광주시 남한산성면)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 봉기. 성남시 제공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인 같은 해 6월 관할 행정당국인 경기도가 일대 주민에게 보낸 토지대금 납부 고지서가 발단이 됐습니다. 고지서의 금액이 약속한 평(3.3㎡)당 2000원의 4∼8배에 달했기 때문이죠.

 

20평을 기준으로 최대 32만원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서울의 잘 지은 마당 딸린 주택 가격이 200만원 남짓이던 시절 얘기입니다. 7월 말까지 일시불로 내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이나 벌금 30만원을 부과하겠다는 경고 문구까지 붙었습니다. 

 

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창출하고 20평을 평당 2000원에 분양해 입주 3년 뒤부터 분할 상환토록 한다는 약속과 달랐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6300여 가구의 주민들은 대금 납부는커녕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백원에 매수한 땅, 만원에 폭리 말라’는 혈서가 나붙었습니다.

 

◆ ‘백원에 매수한 땅, 만원에 폭리’…해방 이후 최초 도시빈민 투쟁

 

이들은 박정희 정부 초기인 1960∼1970년대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정리계획에 따라 이주했던 사람들입니다. 1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광주대단지’를 조성해 잘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에 속아 거처를 옮겨왔습니다.

 

서울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에 살던 빈민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앞다퉈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1970년대 광주 대단지 도로 위로 버스가 달리고 있다. 성남시 제공

성남의 산 중턱에 도착한 주민들은 “이상하다”는 말부터 내뱉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경사지에 군용 텐트 1개만 지급됐습니다. 주변에 일자리를 제공할 변변한 상권이나 시설도 없었습니다. 다시 대규모 천막촌만 형성됐습니다.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 속에서 토지대금 납부 고지서는 주민 불만이 폭발하는 촉매가 됐습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불성실한 협상은 결국 사흘간의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100여명이 다치면서 주동자급 주민 22명은 구속돼 형사처분을 받습니다.

 

성과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주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이 일대를 성남시로 승격했고 상대원공단을 조성했습니다. 2012년 이후에는 당시 폭동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세세하게 이 사건을 열거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인 이재명 대통령과 경기도 수장인 김동연 지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소년공 시절 모습. 연합뉴스

김 지사의 가족은 1970년, 이 대통령의 가족도 1976년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살던 김 지사의 가족은 광주대단지로 강제로 이주당했습니다. 14살 소년이던 김 지사는 천막집에 살면서 서울로 통학했습니다.

 

2022년 대선 당시 새로운물결 후보였던 김 지사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데는 이 같은 배경도 작용했습니다.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공통점, 낮은 곳에서 국민을 돌보겠다는 의지가 접점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여 상황은 다소 괴리가 있었습니다. 복잡한 정치 여정을 겪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동지애보다 경쟁이 부각됐습니다. 경기도에 남았던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 사이에선 김 지사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 도지사 후보·소년 김동연의 ‘꿈’…미완의 복지정책

 

지난 7일 성남시 수정구 산성대로 409 일대를 방문한 김 지사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천막을 치고 살던 땅 위에는 커피숍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서 김 지사는 3년 전 ‘도지사 후보’ 시절의 김동연과 55년 전 ‘소년 김동연’과 마주했습니다.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어려웠던 유년시절 꿈을 키웠던 추억이 서린 동네를 찾아 초심(初心)을 다잡은 겁니다. 

 

이날 이목을 끈 방문지는 김 지사가 살던 천막집 바로 앞에 터를 잡은 ‘성남만남자활센터’였습니다. 13년 연속 우수기관 표창을 받은 곳입니다. 

 

7일 성남만남자활센터의 ‘헤이클린’ 사업장을 방문한 김동연 지사(가운데)가 근로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곳에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생계급여 수급자나 차상위자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일합니다. 이들의 자활을 위해 창업과 직업훈련, 자격증 취득을 돕는 역할을 하죠.

 

이곳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틀을 잡았습니다. 

 

자활센터에서 일하는 199명 시민은 18개 분야에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업이 ‘헤이클린’ 세탁서비스입니다. 일반 주민과 저소득층 모두에게 세탁물 수거부터 배송까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김 지사 취임 이후에는 벌당 2000원에 인근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배송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도민 공모를 거쳐 이름을 ‘블루밍 세탁소’로 지었습니다. ‘블루’(blue)와 ‘꽃이 만개한다’(blooming)는 영어를 조합한 것입니다.

 

올해 도의 성남만남자활센터에 대한 지원 예산은 43억원이 넘습니다. 매출액은 지난 9월까지 23억원입니다. 사실 경제의 논리를 벗어난, 말 그대로 자활을 위한 사업이죠. 

 

‘소년공’ 이 대통령이 시장 시절 씨앗을 뿌리고, ‘천막촌 고학생’ 김 지사가 승계한 복지정책은 얼마나 더 성장할까요. 아직 만개하지 못한 김 지사의 정책들을 평가하기에는 이릅니다. 미흡한 점이 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적잖습니다.

 

그래도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란 믿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