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를 직접 방문해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 계획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통해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두고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국가유산청이 강하게 맞붙은 상황에서 김 총리까지 참전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김 총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버스’까지 저격하며 오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김 총리는 이날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경민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등과 함께 종묘 정전을 찾아 외부 조망을 점검했다.
종묘 앞 풍경을 살펴보던 김 총리는 세운4구역 초고층 재개발 시 발생할 수 있는 경관 문제에 대해 듣고는 “바로 턱하고 숨이 막히게 되겠다”, “(고층 건물이 들어오도록) 놔두면 기가 막힌 경관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9월 종묘에서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열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점도 거론했다. 그는 “최근에 김씨가 종묘를 마구 드나든 것 때문에 국민께서 아마 모욕감을 느끼셨을 텐데 지금 또 이 논란으로 국민의 걱정이 매우 크신 것 같다”고 했다.
종묘를 찾기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기존 계획보다 두 배 높게 짓겠다는 서울시의 발상은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근시적안적 단견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높이 계획 변경을 뼈대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로 변경됐다.
김 총리는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에 종묘 보존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신속히 검토할 것과 종묘를 둘러싼 현재 상황 및 세계유산 지위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을 유네스코에 성실히 설명할 것 등을 지시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총리는 ‘서울시장 차출설’에 거듭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을 겨냥한 김 총리의 이번 행보가 내년 서울시장 선거의 전초전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최근 한강버스 추진 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도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오 시장을 향해 잇따라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 시정 실패 및 개인 비리 검증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오 시장은 곧장 반박에 나섰다. 오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서울시를 매도하고 있어 유감”이라면서 김 총리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오 시장은 김 총리를 향해 “수도의 중심이라 할 종로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종묘를 위한 일인지 냉정한 눈으로 봐 주시길 요청한다”며 “60년 다 되도록 폐허처럼 방치된 세운상가 일대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정비 촉진 사업은 종묘를 훼손할 일이 결단코 없다”고 했다.
오 시장은 또 “‘종묘를 가로막는 고층 빌딩 숲’이란 주장 또한 왜곡된 정치 프레임”이라면서 “녹지축 양옆으로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낮은 건물부터 높은 건물까지 단계적으로 조성해 종묘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