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는 국회 상임위원장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회의 진행과 중재 등 조력자 이미지가 강했던 상임위원장이 상임위 활동 전면에 나서면서 여야 간 갈등이 표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막후 실세에서 전면 공격수로 변모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상임위원장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은 각 상임위의 회의 진행자 역할을 맡고 회의장 질서 유지권 발동, 개회 일시 선정 등을 결정할 수 있다. 회의에서 각 의원에게 발언권을 배분하거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상임위원장의 권한이다. 법률안 심의의 첫 단계가 소관 상임위에서 시작되는 만큼 여러 법안 중 우선순위를 정하고 심사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상임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다. 회의장 밖에서 여야 간사 간 협상을 중재하며 막후 실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식 회의에서는 상임위원장이 의사 진행에 집중하고 개인 발언은 자제하는 관행이 자리 잡게 됐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 제정 이후 의회 내 질서 유지권이 강화되면서 상임위원장의 권한이 커진 반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본회의에서만 가능해 상임위 단계에서 소수당의 견제 수단이 미비한 점도 상임위원장의 독주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장치로, 상임위에서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여야 동수(각 3명)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하는 규정도 있지만 무력화된 지 오래다.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이 야당 몫 위원에 조국혁신당이나 무소속인 범여권 의원을 배정해 4대 2로 안건조정위를 통과하는 식이다.
◆“관행·제도 변화 노력 이어져야”
전문가들은 협치보다 효율을 우선하는 정치권의 관행이 달라지지 않는 한 상임위원장의 운영 스타일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기존 상임위원장 배분을 포함한 원 구성 관례를 따르지 않는 것에서부터 상호 불신이 시작됐다”며 “이재명정부 초반 국정운영 드라이브가 필요하고, 민주당도 다수당의 입지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기류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다만 신 교수는 “단기간에 상임위원장의 운영 방식에 제동을 거는 방법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국회 의석에 변화가 생기거나 정부 임기 중후반에 협치의 중요성이 강조되면 상임위원장에게 기대하는 역할론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 구성 전반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행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의 임기(2년)와 함께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선출한다는 규정만 있다. 별도의 상임위원장 자격 요건이나 배분 방식이 존재하지는 않아서 사실상 관례에 따른 각 교섭단체 간 협상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법에서는 선출 규정만 있기 때문에 위원장의 리더십에 따라 상임위의 분위기가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원 구성 때마다 협치 의지와 중재력을 갖춘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 지금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