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어. 나는 무지개를 더 잘 보기 위해 쏜살같이 들판으로 달려나갔어. 그러다 발을 헛디뎌 깊은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어. 바둥바둥 허우적대면서도 무지개를 봐야 한다는 일념에 온 힘을 다해 진흙탕을 겨우 빠져나왔는데…. 아뿔싸! 신발을 그만 진흙탕에게 빼앗기고 말았어. 다시 들어가 신발을 찾을 수도 없어 나는 그 앞에 그대로 주저앉아 들판 끝에 아름답게 걸려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어. 어찌나 예쁘고 황홀하던지. 신발 잃은 것도 잊고, 한참을 바라보았어. 빨주노초파남보, 그 색깔들이 모두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것 같았어.
아주 어릴 때의 일이야. 지금도 무지개를 볼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나 혼자 킥킥 웃을 때가 많아. 그때 잃어버린 내 고무신과 눈부시게 강렬했던 무지개색과 온몸이 진흙투성이에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내 몰골을 보고도 혼내지 않고 맨발로 달려 나와 우선 목욕부터 하고 새 신발을 사러 가자던 무지개만큼 예뻤던 우리 엄마.
그런데 오늘 에밀리 디킨슨의 글에서 “나는 어렸을 때 두 가지를 잃어버렸어. 하나는 진흙 속에 빠진 신발, 진홍 로벨리아를 찾아 헤매다 맨발로 집에 돌아왔어. 그리고 어머니의 꾸지람.” 부분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하하하! 웃었어. 에밀리 디킨슨도 어렸을 땐 나처럼 온 들판을 헤매다니는 들판의 아이였나 봐. 그녀도 내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들판을 내달렸듯이 새빨간 로벨리아꽃을 찾아 헤매다 진흙탕에 빠졌었나 봐. 진흙탕에 신발을 잃어버리면 정말 찾기 힘들지. 찾다 찾다 결국 못 찾고 돌아올 때의 그 두려움을 나는 알지. 요즘 아이들은 절대 모를 그 두려움. 그래도 그 두려움 한편엔 새 신발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쁨이 숨어 있었지. 하여 어떤 야단을 들어도 얼마든지 눈물 뚝뚝 흘리며 참을 수 있지.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려 무지 노력한 탓에 잠도 쿨쿨 잘 오고, 내일이면 새 신발을 신고 다닐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묘한 쾌감.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