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연장 앞 로비를 서성이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본다. 티켓을 꺼내 오케스트라 로고가 잘 보이도록 각도를 맞추거나, 공연장 로고가 빼곡히 찍힌 포토월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 기억되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이름이다. 큼지막한 오케스트라 로고와 함께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명. 어쩌면 우리는 음악이 아니라 브랜드를 듣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세계 3대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가 11월에 잇따라 서울을 찾았다. 유럽 웬만한 도시에서도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를 한 달 남짓한 간격으로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들고 온 프로그램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는 브람스와 버르토크 작품과 함께 말러 교향곡 5번을 내세웠다. 이날 객석에서 지휘자 해석에 호불호는 있었으나, 오케스트라가 한 세기에 걸쳐 가꿔 온 말러 사운드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베를린 필하모닉은 바그너와 슈만, 브람스 곁에 야나체크·버르토크·스트라빈스키를 나란히 두어 독일 낭만주의에서 20세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자신들만의 계보를 성공적으로 무대 위에서 증명했다.
결국 ‘브랜드를 듣는 시대’라는 말은 피상적인 소비의 시대라는 비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청중이 음악을 둘러싼 서사와 역사, 정체성에 귀 기울이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값을 앞세우는 세계적 악단의 방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그들이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다.
우리가 앞으로 쌓아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모여 언젠가 서울만의 전통과 미학이 된다. 그때가 되면 로비 포토월 앞에서 찍히는 사진 속 이름보다 공연장 안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만의 고유한 소리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