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1월 북유럽 핀란드의 운명은 태풍 앞의 촛불 같았다. 인접국 소련(현 러시아)은 “주권을 양도하지 않으면 침략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3국이 소련의 위협에 굴복해 국권을 포기한 직후였다. 핀란드는 저항하는 길을 택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군의 침공으로 두 나라 사이에 ‘겨울전쟁’이 발발했다. 핀란드는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애초 국력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이듬해인 1940년 3월 13일 핀란드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비록 독립은 지켜냈으나 국토의 무려 10분의 1을 소련에 빼앗겼다. “이런 조약에 서명해야만 하다니, 차라리 내 손이 썩어 버렸으면!” 소련과의 강화 조약 문서를 바라보던 퀴외스티 칼리오 당시 핀란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5개월쯤 지난 1940년 8월 칼리오는 뇌졸중에 걸려 오른손이 마비되고 만다.
건강 악화로 조기 퇴임 의사를 굳힌 칼리오는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1940년 12월 19일 곧 물러날 대통령이 핀란드 국민과 군대에게 송별을 고하는 의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칼리오는 그대로 숨을 거뒀다.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리스토 뤼티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예정을 앞당겨 곧장 취임했다. 이듬해인 1941년 6월 뤼티는 국가원수로서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소련 침략을 준비해 온 나치 독일과 손잡고 소련과 싸워 겨울전쟁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로 했다. 겨울전쟁에 이어 계속된 전쟁이란 뜻에서 ‘계속전쟁’(Continuation War)으로 불린다. 개전 초반 독일군은 소련군을 연전연파하며 승기를 잡는 듯했다. 핀란드군도 소련군에 연전연승을 거두며 실지(失地)에 더해 원래 소련 영토까지 추가로 점령했다. 이대로 종전이 이뤄진다면 핀란드에겐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른다.
1943년 초를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소련 전선에서 후퇴하기 시작한 독일은 패배가 머지않은 듯했다. 뤼티의 속내는 복잡해졌다. 핀란드가 나치 독일의 동맹국 지위를 고집하다간 전후 가혹한 처분을 받거나 심지어 나라를 잃을 수 있었다. 앞서 핀란드를 침략했던 소련이 이제는 연합국 일원으로 미국·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던 뤼티는 1944년 7월 사임한다. 새 대통령은 즉시 계속전쟁을 끝냈다. 겨울전쟁으로 잃었다가 되찾은 땅 전부를 소련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전후 핀란드는 ‘전범국’ 취급을 받긴 했다. 소련 침공을 결정한 뤼티는 ‘전범’으로 기소돼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다. 그래도 어쨌든 핀란드는 당당한 주권국으로 살아남았다. 오늘날 많은 핀란드인은 어쩌면 소련 속국이 될 뻔했던 핀란드의 독립을 뤼티가 지켜냈다고 여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핀란드가 겪은 시련을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지금 우크라이나가 처한 딱한 처지 때문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 러시아 측에 빼앗긴 자국 영토를 전부 러시아에 넘겨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런 내용의 평화 협상안을 만들어 우크라이나 측에 제시하고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대국민 영상 연설에서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해지는 압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며 “역사상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협상 과정에서 절대 우크라이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80여년 전에 칼리오, 뤼티 같은 핀란드 지도자들이 당면했던 고뇌와 결단의 시간이 젤렌스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는 듯하다. 이 전쟁이 끝나면 젤렌스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