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커피를 내리다 손가락을 데었고 여러 물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쏟거나 떨어뜨렸다. 스팸 전화가 연거푸 걸려 오는 통에 동선이 꼬여 같은 곳을 맴돌았다. 내가 타야 하는 전철은 배차 간격이 15분 정도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점점 많아졌으므로 마음이 급했다. 어찌저찌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려는데 왼쪽 발에 위화감이 들었다. 새로 산 신발 때문인가. 나는 그날 처음 꺼내 신은 스웨이드 부츠를 잠시 내려다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출근 시간대에는 꼭 엘리베이터를 양쪽 다 호출해서 붙잡아두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역시나 한참 기다린 뒤에야 지상에 닿을 수 있었다.
전철역을 향해 뛰려는데 다시금 왼발이 불편해졌다. 처음처럼 가벼운 위화감이 아니라 묵직한 고통에 가까웠는데, 걸음을 뗄 때마다 발뒤꿈치가 심하게 저렸다.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어본 나는 크게 당황했다. 목이 긴 부츠 안쪽 바닥이 마감이 전혀 안 된 상태였다. 밑창도 깔지 않아 구두 뒷굽을 고정한 쇠 핀 4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더 살필 겨를도 없이 나는 서둘러 집으로 뛰어들어가 신발을 갈아신고 나와야 했다.
객실에 꽉 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점점 화가 났다. 대기업 쇼핑몰에서 검수도 제대로 안 하고 상품을 출고하다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고객센터와 통화할 수 없어 문의 글을 남긴 뒤에도 나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브랜드 제품이 고작, 같은 치졸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였으니 상담사와 통화하게 되었을 때의 나는 제법 뾰족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서툴게 응답하는 상담사의 목소리가 유독 앳된 것이 마음에 걸린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