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위협하는 가운데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보다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환율 안정에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등이 늘며 달러 유출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수출 등을 통해 국내 유입되는 달러마저 줄면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환율 방어에 나서기로 했지만, 더 중요한 건 국내 경제 체질 개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내년 경상수지는 1037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올해 전망치(1159억달러)보다 120억달러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내년 경상수지를 900억달러로 내다봐 올해 전망치(1100억달러)보다 200억달러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드는 건 내년 수출 여건이 올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전날 경제전망에서 올해 통관 수출이 2.5% 늘겠지만 내년에는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수요 증가세 등은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경기 부진과 교역 둔화 등이 수출 전선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늘면 국내 외환 시장에 달러가 늘어 원화 가치가 상승(환율 하락)하게 된다. 다만 이런 공식은 최근 옅어지고 있다. 서학개미 등 해외 투자가 늘면서다. 실제 올해 해외 투자 등 금융계정을 통한 달러 유출은 9월까지 809억9000만달러로 나타나 같은 기간 경상수지(827억7000만달러)에 육박했다. 개인·기업의 해외 투자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마저 줄면 원화 가치는 하방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상통계학부)는 “경상수지가 흑자면 달러가 들어오는 것인데, 내년에 흑자 폭이 줄어든다면 달러 공급이 줄어 환율이 올라갈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연 2.50%)과 미국(연 3.75~4.00%)의 기준금리가 역전돼 있는데,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원·달러 환율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원·달러 환율 향방에 있어 미국의 통화정책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3500억달러 대미 투자가 순차적으로 이뤄져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전날 4자 협의체를 가동해 환율 안정에 나섰다. 주요 달러 수급 주체인 국민연금을 통해 원화 가치를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협의체는 원화 가치가 미리 정해둔 기준보다 더 낮아질 경우 보유한 해외 자산의 최대 10%만큼 시장에 내놓는 ‘전략적 환헤지’ 운용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 종료되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650억달러 규모의 스와프 연장 계약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외환당국이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외환시장협의회 소속 9개 증권사까지 불러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주요 수출입기업과 국민연금을 만난 데 이어 증권사까지 접촉한 것이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472.4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에 있어 최종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국내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진욱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주가 상승 폭이 크고 미국 기업의 생산성 등 기초 체력이 좋은 점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추가 메시지를 내놓을 예정이다. 기재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구 부총리가 26일 오전 10시부터 외환시장 등 최근 경제상황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부총리 기자간담회가 하루 전에 잡힌 건 이례적이다. 외환당국이 그만큼 최근 환율 급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