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민주주의 기틀을 잡은 미국 헌법엔 정당 조항이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당을 ‘필요악’ 정도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정치 결사체는 필요하지만 그렇게 모인 집단은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는 인식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퇴임 고별사에서 정당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워싱턴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미국의 주요 정당인 공화·민주는 최근의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 사태가 보여주듯 정파적 이해를 국익과 민생 앞에 두는 행태를 보인다. 중도 성향 민주당 상원의원 7명이 당론과 다른 소신투표로 셧다운 교착 국면을 해소한 게 뉴스거리가 됐을 정도다. 정쟁이든 양극화든 한국 정치는 선두권이다. 양극화 원인을 놓고는 닭(정당)이 먼저냐, 달걀(강성 지지층)이 먼저냐는 논란도 있지만, 지금은 정당과 지지층이 함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치 현실에서 강성 지지층은 순기능도 발휘한다. 판을 뒤엎고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노무현 지지 모임인 ‘노사모’는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국민참여 경선에서 반전의 정치혁명을 이뤄냈다. 노사모가 주도했던 지지자의 정당 경선 참여와 선거자금 모금 등은 이후 각 정당의 상향식 공천과 정치자금 개혁 같은 제도 개혁으로 이어졌다. 진보 진영의 열성 지지자들은 문재인·이재명 팬덤으로 변화하면서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민주당은 지지층을 대거 당원으로 편입시키며 100만 당원 시대를 열었다. 대다수 당원이 지난 대표 경선에서 노무현 키즈인 정청래를 밀어 올렸다.
정 대표가 최근 ‘당원중심 정당’을 표방하며 당원 투표 비중을 더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의 주인인 당원의 권리가 커져야 ‘정당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했다.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의 비중을 지금의 1대 17 수준에서 1대 1로 바꾸자고 한다. 이렇게 되면 당장 내년에 치러질 대표 경선에서 당원 세가 강한 정 대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대표를 어떻게 선출하느냐는 문제는 당의 구성원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민주당의 당헌·당규 개정으로 누가 이익을 보느냐는 문제겠지만, 국민은 권리당원의 위상 강화가 가져올 후유증을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