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초기 대조를 이루는 두 황제는 네로와 베스파시아누스였다. 네로는 처음엔 철학자 세네카의 보좌를 받고 비교적 온건한 정치를 펼쳤다. 문화예술의 후원으로 명성도 쌓았다. 하지만 로마 대화재 이후 돌변했다. 그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돌려 기독교를 박해했고, 잔혹한 행동을 일삼아 귀족과 군부의 반발이 일어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가 죽은 후 일어난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새 왕조의 황제로 즉위했다. 폭군 네로에 의해서 피폐해진 로마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무너진 제도와 재정을 정비하고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대규모 건축 사업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인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8년에 걸쳐 제작됐다.
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흉상이다. 간략하지만 사실적인 묘사 안에 섬세한 효과들이 담겼다. 짧은 곱슬머리가 바짝 붙은 둥글고 단단한 두상, 선이 굵고 오뚝한 콧날과 턱과 목의 깊게 파인 주름 등이 강인함을 풍긴다. 꽉 다문 입과 크게 부릅뜬 눈, 이마와 미간의 험악한 주름 등이 조금은 무자비하다는 인상도 만들어낸다. 황제의 모습이지만 미화하거나 위엄 있는 모습으로 꾸미려 하지 않았고, 인상과 표정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나타내려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