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면서 지르기 기합.” “어이.”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강당. 도복을 입은 학생 5명이 단상에 올라 구령에 맞춰 태권도 동작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태권도 시범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들은 모두 한빛맹학교 재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동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배운 대로 차근차근 동작을 선보였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태권도를 배울 수 있게 된 건 서울시교육청이 개발한 국내 최초 태권도 점자교재와 오디오북 덕분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국기원, 한국점자도서관과 ‘시각장애학생 태권도 점자교재 및 오디오북 개발·보급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앞서 품새 태극1장 점자교본과 오디오북을 만들어 전국 15개 시각장애학교에 보급했다. 교본은 이동·동작·호흡을 촉각 중심 언어로 재구성해 학생들이 동작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제작됐다.
시각장애학생들은 그동안 적절한 교본, 교수법이 없어 태권도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에도 태권도 학원에 다녔던 초등부 5학년 현재성군은 “관장님이 ‘이렇게 하면 돼’라고만 설명하실 때마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며 “그래서 내 생각대로 해보면 친구들이 ‘넌 왜 동작을 그렇게 해’라고 지적했다”고 떠올렸다.
중학부 3학년인 김건우군은 “어릴 때 주위 형들이 태권도장을 다닌다 하면 ‘어디 재밌는 걸 하러 가나’ 싶었다. 커서 보니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며 “최근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졌다”고 말했다. 초등부 3학년 심다은양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제겐 빛이나 마찬가지다. 태권도를 더 배워보고 싶어졌다. 어른이 된 후에도 취미로 계속하고 싶다”면서 웃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태극 8장까지 교본 제작을 계획 중이다. 태극 1장은 텍스트 위주였지만, 2장부터는 동작 삽화에도 점자를 남겨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다. 서울시교육청은 나아가 이번 사업이 시각장애학생 체육교육 모델을 제도화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