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짜리 압구정 아파트 감정가 39억으로 낮춰달라”… 국세청, 증여 2000여건 전수검증

올해 서울 집합건물 증여 7708건… 2022년 이후 최대치
4일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강남권 아파트 단지 등이 보이고 있다. 뉴스1

 

“같은 단지 아파트가 60억에 거래됐는데, 감정평가를 40억 이하로 맞출 수 있을까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A씨는 아버지로부터 고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뒤 예상보다 큰 증여세 부담이 나오자 감정평가법인에 이 같은 부탁을 했다. 그는 인근 매매가격의 65% 수준인 39억 원을 감정가로 제출해 증여세를 신고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를 부당하게 낮춘 감정가로 판단하고 직접 감정평가를 진행해 시가를 다시 산정했다. 해당 감정평가법인은 ‘시가 불인정 감정기관’ 지정까지 검토받는 상황이다.

 

4일 국세청은 강남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일대에서 이처럼 감정가 축소·부담부 증여·세대생략 등 편법 증여가 반복되고 있다고 보고 전수 검증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최근 자산가들의 증여 거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 1∼7월 이들 지역에서 이뤄진 고가 아파트 증여 2077건을 전부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11월 현재 증여세 신고기한이 지난 건수 가운데 1699건이 이미 신고된 상태다.

 

신고 건수 중 1068건은 시가 기준 신고, 631건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으로 신고한 사례다. 시가 신고분은 감정평가액이 적정한지, 사례 매매가 대비 지나치게 낮게 평가된 ‘부당 감정’ 여부를 중점 점검한다. 공시가격 신고분은 시가보다 현저히 낮을 경우 국세청이 직접 감정평가에 나선다.

 

편법 증여 수법은 감정가 축소 외에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부담부 증여가 있다. 담보 대출 등 채무를 함께 넘기는 방식으로, 채무액은 증여자가 양도소득세를 부담하는 구조라 절세 효과가 크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B씨는 모친에게 약 20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부담부 증여받았다며 채무를 본인이 상환한다고 주장했으나, 생활비·해외여행비·명품 구입비 등 거액의 소비 자금 출처가 모호해 국세청이 조사에 착수했다.

 

임차인을 통한 편법도 적발됐다. 부모가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했으나, 기존 임차인(외조부)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실질 채무 부담을 줄인 뒤 신규 임차인에게 받은 고액 보증금을 해외주식·골드바·명품 등 사치성 소비에 사용한 사례도 보고됐다.

 

또한 아파트와 증여세 납부용 현금을 함께 물려주면 합산 과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아파트는 부모가 증여하고 현금은 조부가 증여한 것처럼 꾸미는 ‘세대생략 쪼개기’ 방식도 국세청의 주요 조사 대상이다.

 

국세청은 이들 부동산 증여 과정에서 증여자가 처음 자산을 취득할 때의 자금 출처까지 확인해 탈루가 없는지 함께 살펴볼 계획이다.

 

부동산 등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 집합건물 증여는 7708건으로, 2022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다. 미성년자 증여 223건 역시 2022년 이후 최대치이며, 절반 이상이 강남4구·마용성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오상훈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세청에서 강남4구·마용성 등 고가 아파트 증여 2077건 전수 검증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오상훈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미성년자 등 자금 능력이 없는 이들이 부모·조부모 찬스로 증여세·취득세·보유세를 대신 부담하며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정밀하게 추적해 빈틈없이 과세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