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존재/ 케기 크루/ 정세민/ 가지/ 3만8000원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가 작금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문제라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각국의 지도자, 과학, 경제, 사회, 미래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수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렇다 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여성 작가이자 자연보호활동가인 저자는 이에 대해 기후와 생물다양성 문제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하지 못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환경·사회 문제의 대부분은 지구 문명사를 함께 이루어온 사람과 동물의 어긋난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인류 문명사에서 ‘동물의 역할’은 심대하다. 동물이 없다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삶도 지속할 수 없다. 지금 위기에 처한 그들을 구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도 유지할 수 없다”며 셀 수도 없는 생명체를 소개하고 야생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출간 계기가 흥미롭다. 사람과 동물의 유대감을 일깨운 강렬한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됐다. “오래된 시계와 촛대가 있는 실내 공간에 거대한 몸집의 멧돼지와 머리를 땋은 소녀가 함께 있다. 멧돼지는 빵 조각이 흩뿌려져 있는 나무 탁자 위로 앞발을 올리고 있고, 소녀는 큰 빵 덩어리를 손에 들고 멧돼지를 바라보고 있다.” 폴란드 동물 사진작가 레흐 빌체크의 1970년 사진 속 소녀는 동물학자 시모나 코사크, 멧돼지의 이름은 자브카다. 현대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이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본 작가는 이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돼 인간과 동물의 오랜 관계를 되짚어 보기로 하고 5년여의 작업 끝에 책을 냈다.
동물과 인간의 사이가 한때는 저자가 매료된 사진과 같이 친숙한 관계이기도 했으나, 인간이 동물을 연구와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인간과 동물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에 빗대 ‘님 침스키’라고 명명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던 1970년대 실험 ‘님 프로젝트’는 인간이 철저히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기준으로 동물을 탐구했던 시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어미와 이별하고 인간 아이처럼 자란 님은 4년간 125개의 수화를 익혀 여러 조합으로 사용하는 등 습득 능력을 보였으나 연구자가 유도할 때만 반응을 보였을 뿐 진정한 대화를 나눈 게 아니었다. 침팬지로 살던 님이 26세에 심장마비로 숨지면서 자성이 일기도 했다.
저자는 기후위기 해법으로 ‘동물’에 주목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동물은 아무런 대가 없이 생태계를 지탱하며 그 생태계는 우리가 숨 쉴 산소, 먹을 음식,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 인간의 삶도 무너지고 만다. 그런 만큼 동물은 이 생태계를 유지하고 돌보는 핵심 일꾼들이다. 2023년 예일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상어, 늑대, 수달, 소, 얼룩말, 물고기, 들소, 코끼리, 고래와 같은 아홉 가지 주요 동물군이 매년 64억t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흡수한다. 이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탄소 흡수량에 맞먹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