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북극해 시대, 멀리 보고 준비하자

미·중·러 자원·항로·안보경쟁 격화
이재명정부도 국정과제로 추진
자원개발 참여 중장기 전략 필요
쇄빙선 등 러와의 협력도 나서야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이 북극해를 21세기판 그레이트게임의 무대로 만들고 있다. 19세기 그레이트게임에서는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영국과 러시아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번에는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중국이 주인공들이다.

북극해의 면적은 1450만㎢로 한반도의 65배에 달한다. 북극해는 미발견 석유의 약 13%, 천연가스의 약 30%를 비롯해 다양한 에너지·광물 자원이 매장된 자원의 보고다. 또한 이곳은 군사·안보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 유라시아학

특히 북극해의 대표적 뱃길인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노선보다 운송 기간을 15일가량 단축할 수 있다.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는 2030년 이후 북극항로는 기존의 남방항로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바탕으로 일각에서는 해양 세력에 대한 육상 세력의 ‘복수’가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북극 문제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 북극이사회를 중심으로 경제 및 환경 분야에 관한 다자 협력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러나 러·우 전쟁의 여파로 북극이사회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북극해에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한랭 전선이 드리웠다. 지난해 4월 스웨덴과 핀란드를 포함한 13개 나토 국가가 북유럽 방어 훈련 ‘노르딕 리스폰스 2024’를 실시했다. 9월에는 나토의 북극 진출 견제의 일환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북부연합 2024’라는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북극해 그레이트게임의 선두 주자는 러시아다. 북극해 해안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곳에서 확고한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2035 러시아연방 북극 개발 전략’을 통해 에너지, 광물 자원, 북극항로, 군사 기지, 환경 보호 등 다방면에서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 7척을 포함해 수십 척의 쇄빙선단을 갖추었다.

중국은 북극해 진출을 주요 국가 전략으로 삼고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야말반도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 에너지 부문과 북극항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 하순 칭다오에서 출발한 중국 국적의 첫 정기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거쳐 20일 만에 유럽 주요 항구까지 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미국은 자원 및 항로 개발, 군사력 배치 등 여러 면에서 러시아에 뒤처져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북극 자원 채굴 촉진, 쇄빙선 증강 등을 통해 군사, 물류 역량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논란거리도 불거졌다. 경제적 이익과 안보 역량 제고를 명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매입하거나 병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정책과 동맹국에 대한 고압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정책은 북극해 나머지 연안국들과 엇박자를 연출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격차 해소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극해 그레이트게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재명정부가 북극항로 진출을 주요 국정 과제의 하나로 삼고 준비를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범정부 기구인 ‘북극항로 추진본부’의 출범과 함께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특별법 제정 등이 계획되어 있다. 그러한 기반 위에 북극해 자원 개발 참여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쇄빙선 건조를 위한 한·러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극항로 운영에 필요한 정보 통신 기술과 북극해 연안 도시의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양국 간 협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러 제재뿐만 아니라 러시아·북한 간 동맹조약 체결과 북한군의 파병, 러·북 군사협력의 강화 등은 러시아와의 협력에 중대한 장애물이다. 한편으로 북극항로 배후지의 낙후성, 인프라의 미비, 지정학적 리스크의 존재, 알래스카 LNG 개발 참여를 원하는 미국과의 관계 등 고려할 요소들이 적지 않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멀리 보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 유라시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