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 52시간 제외’ 무산, 대만·중국과 경쟁할 수 있겠나

국회 산자위 ‘반쪽’ 반도체법 통과
‘996’ ‘007’ 中한테도 추월당할 판
첨단산업 유연한 제도 실기 말아야
'주 52시간 예외 적용' 뺀 반도체특별법, 여야 합의 산자위 통과 (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철규 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 국회(정기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제9차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5.12.4 eastsea@yna.co.kr/2025-12-04 15:20:37/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반도체 특별법에서 지난 1년 넘게 논의했던 핵심 쟁점인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끝내 빠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어제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 합의로 ‘반도체산업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법안에는 국가가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과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기업들이 절절히 호소했던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 조항은 제외됐다. ‘반도체 연구 인력의 근로 특례를 추가 논의한다’는 부대 의견이 달렸지만 아무 기약이 없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경쟁국들이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벌이는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각국이 시간과 자원을 총동원해 속도전에 돌입한 지 오래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 연구실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TSMC는 2014년부터 ‘나이트호크 프로젝트’(3교대 연구방식)를 가동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중국의 테크 기업도 996(주 6일, 오전 9시∼오후 9시)을 넘어 007(24시간, 7일) 근무까지 불사한다. 미국 역시 연봉 10만달러 이상 전문직에는 아예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이런 판에 한국만 근로시간 족쇄에 묶어 두는 건 자해나 다름없다.

 

대내외에서 한국 반도체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첨단반도체의 글로벌 생산점유율은 2023년 기준 대만(68%) 한국(12%) 미국(12%) 중국(8%) 순인데, 2027년 미국이 17%로 한국(13%)을 추월한다. 한국은 반도체 기술 기초역량에서 이미 중국에 뒤처졌고(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월 보고서) 세계 1위인 메모리 분야마저 5년 내 역전당한다(한국경제인협회 11월 조사)고 한다. 보조금 같은 재정 지원보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더 절실하고 긴박하다는 기업의 읍소에서는 위기감이 묻어 있다.

 

반도체는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대들보이자 국가안보에도 직결된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특혜로 보는 낡은 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지게 된다”고 했다. 반도체산업의 손발을 꽁꽁 묶어두고 ‘AI 3대 강국’도약이 가당키나 하겠나. 당정은 첨단기술분야만이라도 유연한 제도적 틀을 조속히 갖춰야 할 것이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