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방예산이 정부안(66조2947억원) 대비 6% 감소한 65조8642억원으로 2일 확정됐다. 지난해보다 7.5% 증가한 것으로서 인공지능(AI)·드론 등 첨단 전력 강화에 투자가 집중됐다는 평가다.
매년 정부가 편성하는 예산은 국회에 제출된 직후 해당 상임위원회 심의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여야간 협의 등을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되는 절차를 거친다.
올해도 이같은 방식으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무기도입 관련 예산이 일부 증·감액됐다.
국회예산정책처나 국방위원회에서 지적한 내용이 다수 반영됐다.
국방예산 확정 과정에서 국회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공중급유기 예산
국회 최종 예산심의에선 정부안에는 없었으나 상임위원회에서 증액된 사업이 삭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은 달랐다. 국회에서 예산을 신규·추가 배정한 국방부·병무청·방위사업청 사업 중 가장 큰 증액 규모를 기록했다.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은 2022년 12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공중급유기 추가 도입이 의결되면서 본격화됐다. 2029년까지 1조2000억원을 투입해 2대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사업비가 수년째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진척이 없었다.
이에 공군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중급유기 추가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업 진행을 요청했다.
국회 국방위는 예산을 심의하면서 2억7700만원을 내년도 국방예산에 신규 반영했다. 그런데 예결특위 심의를 거치며 예산이 300억원으로 급증했다. 흔치 않은 사례라는 점에서 증액 배경에 군과 방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의결로 확정된 내년도 사업예산은 기종선정과 계약이 가능한 규모라는 것이 군 안팎의 평가다.
다만 내년까지 사업절차가 마무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예산이 많다고 해서 정부의 사업 진행이 빨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정부의 ‘시계’는 그리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년 말까지 계약하려면 입찰공고→제안서 접수→제안서 평가→구매시험평가→기종결정평가에 이르는 사업단계에서 단 하나의 장애도 없어야 한다. 기종선정 시점까지 후보기종이 복수로 남아있어야 한다.
평가·협상 도중 1개 업체만 남으면 입찰 재공고를 실시할 수밖에 없고, 사업 집행은 2027년까지 이어진다는 의미다. 2026년도 예산 300억원은 불용 처리 된다.
단일 업체만 참여해서 수의계약을 진행할 확률도 있다.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 보잉 KC-46A는 급유작업에 쓰는 원격시각시스템(RVS) 등의 결함에 직면해있다.
보잉이 사업 참여가 어렵다면 공군 KC-330 공중급유기 제작사인 유럽 에어버스만 남는다. 수 차례의 입찰공고에 에어버스만 응한다면, 제도적으론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에 명시된 미국산 무기구매다.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도입하려면,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대형 해외도입사업에서 미국산 무기·장비를 선택해야 한다.
충분한 수준의 경쟁 구도가 성립되기 전까진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위성통신·전차·드론 등 반영
공중급유기 2차 사업 외에도 군위성통신체계-Ⅲ 연구개발 사업 예산 2억5100만원이 신규 반영됐다.
국회 국방위에선 3억4400만원이 증액됐으나 예결특위에서 증액 폭이 다소 줄었다.
군위성통신체계-Ⅲ는 내년부터 2032년까지 1조3330억원을 투입, 전자기파 방호능력 등을 보강한 군 위성통신을 띄우는 사업이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는 사업타당성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운용중인 군위성-Ⅰ이 내년 하반기 퇴역하고, 그에 따른 군위성-Ⅱ의 궤도 이동으로 공백이 생기는 위성 궤도와 주파수를 유지하려면 2032년 10월까지 군위성-Ⅲ 전력화가 필수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내년 예산에 4억2000만원 반영을 희망했고, 국회 심의에서 일부 예산이 증액됐다.
K-1E1 전차를 개량하는 K-1E2 전차 사업도 5억원이 신규 반영됐다. 육군과 해병대에서 쓰는 K-1E1전차는 포수조준경이 노후화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교체하면서 냉방장치를 장착하는 등의 개량을 통해 K-1E2 전차를 만들려고 했으나 정부의 첨단 전력 우선 기조에 따라 정부예산안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국회 국방위는 심의과정에서 5억원을 새로 배정했고, 예결특위 심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군은 미래 전차 소요 등을 감안해 기존 K-1 전차 1000여대 중 일부 물량을 K-1E2 전차로 바꿀 계획이다.
K-2 전차 양산 사업도 정부에서 제출한 예산인 3539억700만원에서 10억원이 증액됐다.
기존에는 육군 전력화만 고려했으나 해병대에도 K-2 전차를 2029년 이후부터 전력화할 필요가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는 10억원 증액을 결정했고, 예결특위도 통과했다.
합참은 K-2 전차 소요량을 늘리기 위해 육군과 해병대에서 소요제기를 받아서 분석실험을 하고 있으며, 올 연말에 소요 수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 정찰위성 관련 사업인 425 사업(R&D)은 정부안에선 404억원었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106억원이 증액됐다.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추진하는 ‘50만 드론전사’ 사업은 국회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330억원이 배정됐다.
우선 교육용 상용드론 1만1265대 구매에 293억원이 쓰인다.
정부는 처음에는 드론 단가를 170만원 수준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단계에서 핵심 장비 국산화 등을 감안, 단가를 260만원 기준으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비행제어기, 위성항법장치(GPS), 모터, 배터리 등을 국산화할 수 있다.
교육훈련 과정에서 발생할 위험이 있는 인적·물적 피해에 대비한 보험료로 22억6000만원이 신규 증액됐다. 드론 보험 문제는 올해 국회 결산 등에서도 지적된 사안이었다.
이밖에 드론 전문교관 양성비 14억3000만원도 편성됐다.
◆항공·유도·함정 분야 사업 감액
방위사업청 소관 방위력개선사업 중에선 15개 사업이 정부안보다 감액됐다. 시험평가와 연구인프라, 예비탄약 분야를 제외하면 12개 전력증강사업이 감액 대상이다. 대부분 국회 국방위에서 감액 처리됐던 사업이다.
신호정보 수집을 맡는 전자정찰기 4대를 개발하는 백두체계능력보강 2차(R&D)는 국회 국방위 심의에서 정부예산 409억8700만원 중 14억4300만원이 깎였다. 예결특위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66억3700만원 감액으로 결정됐다.
관련 시설사업이 1년 정도 지연되며 올해 시설 예산 50억원이 불용 처리될 가능성이 커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GOP 과학화경계시스템 성능개량은 국회 국방위가 정부안(1291억원)에서 8억원을 증액하고 767억원 가량을 감액했다. 예결특위 심의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론 1240억4600만원이 삭감됐다.
해당 사업은 방위사업청에서 지난 3월 제안서 평가를 거쳐 3개 업체를 선정, 7월부터 구매시험평가를 실시했다.
평가를 해보니 3개 업체 장비에서 영상 저장 누락, 감지체계 오경보 기준율 초과 등의 결함이 발견됐다.
3개 업체 모두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입찰재공고와 재평가 등의 절차를 거치면, 사업 진행이 늦춰지면서 예산 집행 규모도 줄어든다. 국회 예산심의결과도 이같은 부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거리 자폭드론과 특수작전용대물타격무인기는 국회 국방위 의견이 반영되는 형태로 감액됐다.
중거리 자폭드론은 정부예산안에 203억원이 배정됐다. 다만 올해 5월 첫 입찰공고에선 응찰하는 업체가 없었다. 7월 재공고에선 적합한 업체를 찾지 못했다. 일정이 지연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방위 심의 과정에서 103억원 정도가 감액됐고, 예결특위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특임여단이 쓰는 특수작전용대물타격무인기 사업은 295억원이 정부예산안에 포함됐다.
협상과정에서 일반상업구매와 미국 정부 보증을 받는 대외군사판매(FMS)를 함께 추진하기로 하면서 제안요청서를 수정했고, 사업이 늦어졌다. 국방위는 201억원 가량을 감액했으며, 예결특위도 그대로 수용했다.
화생방 작전용 제독차-Ⅱ 경미한 성능개량은 내년 예산(22억1500만원) 전액이 삭감됐다.
제독차-Ⅱ 차체를 5t 중형표준차량으로 개조·변경하는 사업인데, 제독장치 양산을 맡을 업체가 지난 8월 생산이 어렵다고 밝히면서 사업 집행이 불투명해졌다. 국방위와 예결특위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북도서에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고속전투주정도 내년 예산(123억 5300만원)에서 11억2700만원이 감액됐다.
설계용역 도중 함선고정시설 및 부대시설 설치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설계용역 기간이 연장됐다.
국방위는 내년도 예산 중 공사비(18억7900만원)에서 착수금 7억52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을 감액했고, 예결특위도 수용했다.
특수작전용대형기동헬기 사업도 401억2500만원이 내년 예산안에 편성됐으나, 육군이 관련 시설 사업 추진방식을 바꾸면서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시설 설계 및 부지매입 시점이 2027년으로 바뀌었다.
국방위는 관련 비용 중 1억원을 제외한 68억8200만원 감액을 결정했고, 예결특위도 그대로 수용했다.
사업추진방식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도 807억원에서 309억원이 삭감됐고, 단거리 공대공유도탄-Ⅱ(R&D)도 약 500억원에서 10억5300만원이 감액됐다.
SM-6를 구매하는 장거리 함대공유도탄도 9억900만원에서 4억900만원이 삭감됐으며, 전술지대지유도무기-Ⅱ(R&D)도 554억5000만원에서 12억7800만원이 감액됐다. 철매-Ⅱ 성능개량 2차 사업도 1337억7200만원에서 4억3400만원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