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수상이 커리어 보장하던 시대 끝났다” 독창성과 진정성 강조한 세계 음악계

“콩쿠르의 본질은 ‘우승’이 아니다”, “콩쿠르, 아티스트의 목적지를 잇는 다리 돼야”
피터 폴 카인라드 국제콩쿠르세계연맹 회장이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비욘드 더 스테이지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주요 콩쿠르 관계자들이 콩쿠르 수상이 경력을 보장하는 시대는 가고, 연주자의 독창성·진정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우승을 목표로 달리는 구조에서 벗어나, 콩쿠르가 오히려 예술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발견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과 공동으로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포럼 ‘비욘드 더 스테이지 2025’를 개최했다. 6일까지 열리는 이번 포럼은 차세대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콩쿠르의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세계 클래식계 주요 기관 관계자들이 모였다.

 

피터 폴 카인라드 WFIMC 회장은 ‘오늘날의 예술적 정체성’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카인라드 회장은 “우승이 본질이 아니다”라며 “많은 콩쿠르가 (연주자에게) 희망을 주지만 모든 기대를 실현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악보 너머의 연주를 하는 것이 어렵고 두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음악 자체가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존의 것의 복제가 아닌 개성, 진정성,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객 환경의 변화를 들어 콩쿠르와 연주자 모두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래식 관객층이 지금처럼 넓었던 적이 없어요. 이제 공연 외에도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더 과감하고 자유롭고 개성 있는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해요. 모든 산업에서 발명가가 필요하듯, 예술가들이 우리 산업(음악)의 발명가입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잊어선 안 되고, 클래식 음악의 패러다임 전환은 지금이 적기입니다.”

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이사가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차세대 아티스트를 위해 열린 국제 커리어 포럼 ‘비욘드 더 스테이지 2025’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세션에서는 ‘오늘날 콩쿠르는 어떻게 커리어를 지원하는가’를 주제로 각 기관 운영자들이 연사로 나섰다.

 

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는 “콩쿠르가 연주자 개인이 자신의 길을 발견하는 질문의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콩쿠르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며 예술가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3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내 연주가 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지, 청중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두 번째는 성장의 여정을 함께할 파트너십이 중요한 만큼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는 이어 “요즘은 전통 레퍼토리와 현대 작품을 엮어내는 기획력,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소통 능력 등이 필수 역량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경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렌 곽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대표와 디디에 슈노르크 제네바 콩쿠르 사무총장은 예술가 성장 플랫폼으로서 콩쿠르의 지원 방식을 다른 기관들과 공유했다. 디디에 슈노르크 제네바 콩쿠르 사무총장은 콩쿠르가 예술가를 성장시키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네바 콩쿠르는 처음엔 단순한 콘서트 기회 제공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코칭, 전문 컨설팅, 맞춤형 커리어 개발을 아우르는 통합 멘토십 제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포럼을 기획·추진한 정병국 예술위원장은 “한국이 콩쿠르 강국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지원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