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 위그나라자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태평양지역국장은 AI가 불러올 미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AI로 인해 디지털 격차가 커질 수 있지만, 이를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잘 활용할 경우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 역할을 주도할 수 있는 건 고도의 기술을 먼저 획득한 ‘AI 선진국’들이며 한국은 그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UNDP가 지난 2일 발표한 ‘차세대 대격차: AI가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이유’ 보고서 발간을 맞아 방한한 위그나라자 국장을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위그나라자 국장은 이번 방한에 대해 UNDP의 AI 보고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한 핵심 지역이 한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태 지역 나라들이 AI를 기회로 활용해 위험을 관리하고, 더 광범위한 개발을 지원할 방안을 제시하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은 전 세계 최상위권인 AI 발전도를 바탕으로 역내 격차 해소 및 규범 마련을 이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보고서는 AI로 인한 변화를 산업혁명 때의 대분기(Great Divergence)에 비유하며 당시 많은 서구 국가의 급속한 현대화와 대비된 다른 국가들의 뒤처진 속도가 만들 불균등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AI로 얻는 이익 대부분은 부유한 국가들만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그나라자 국장은 “AI를 국가 간 격차를 더 벌리는 요인이 아닌, ‘수렴과 가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역·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통해 함께 전진하지 않고 ‘선진국만의 레이스’가 될 경우 이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함께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을 역내 AI 선진국으로 꼽은 위그나라자 국장은 “AI는 계속 학습·진화하고 범죄 세력 역시 AI를 활용하는 수단을 새롭게 모색한다”며 “선진국들이 항상 한발 앞서 나가면서 안전장치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같은 나라를 보면서 기본기가 약한 국가들이 시행착오나 학습 과정을 단축해 도약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몰디브, 미얀마 같은 곳은 안정적인 전력 및 기타 자원부터 부족한 실정이며 아태 지역의 약 4분의 1은 온라인 접속도 불가능할 만큼 격차는 이미 상당하다.
위그나라자 국장은 “대규모 디지털·AI 역량 고도화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새로운 능력을 개발하도록 돕고, 민간 영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거 교육 서비스를 전혀 누리지 못했던 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게 하는 등 AI의 활용 규모와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AI를 통해 이재민 지원, 디지털 금융, 보건·교육 등에서 필요한 이들에게 정확히 도달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가 기존에 존재하는 성별 임금격차 등을 줄이는 도구가 되려면 여성들의 AI 교육 기회 및 개발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위그나라자 국장은 강조했다. 그는 “현재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 편향이 생기기 쉬운데, 여성 개발자들이 설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AI 접근성 관련해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