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가 패소 비용 5년간 475억… ‘기계적 항소’ 논란

배상액 더하면 6918억 달해
항소 건수 해마다 급증 추세
2020년 64건에서 작년 317건

피해구제 늦추고 소송비만 늘어
법무부 “법리·형평성 고려 검토”

국가가 손해배상소송에서 패소하며 떠안은 ‘소송비용확정액’이 해마다 증가해 작년엔 1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비용확정액은 배상액과 별도로 변호사 비용 등 패소자가 부담해야 할 승소자의 소송비용을 법원이 정해준 금액이다. 피해구제를 늦추고 소송비용만 증가시키는 ‘기계적 소송’을 막는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의 현판. 과천=연합뉴스

8일 법무부로부터 정보공개 청구한 국가손배소 관련 현황을 보면 국가가 항소·상소한 건수는 2020년 64·41건, 2021년 42·16건, 2022년 83·19건, 2023년 136·22건, 2024년 317·40건이다. 올해는 7월 기준으로 246·86건인데 같은 추세라면 작년 수치를 크게 상회할 전망이다.

소송비용확정액과 소송비용도 덩달아 늘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총 475억1100만원을 지출했다. 5년간 배상액까지 더하면 6918억5000만원에 달했다. 소송비용확정액은 2020년 100억4100만원, 2021년 77억5100만원, 2022년 74억7100만원, 2023년 80억3100만원, 2024년 101억6900만원이었다. 소송비용도 2020년 5억원, 2021년 7억800만원, 2022년 9억4300만원, 2023년 8억5400만원, 2024년 10억43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패소했다고 반드시 승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국가 상대 소송을 지휘하는 법무부의 상소 관련 지침이 없어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로펌만 좋은 일’이라는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과거사 관련 국가손배소를 대리했던 이정도 변호사는 “소송에 대한 법무부의 대응은 일관되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법무부 장관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송 방향이나 항소 여부, 강제조정·화해권고 수용 여부 등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소송이 표류하면서 늘어난 국가 부담 비용도 세수에서 부담하게 돼 종국적으로 국민의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2022년 정부와 국회에 진실규명결정 사건에 대한 배·보상 입법을 권고했다.

 

지난달 발표한 진화위 종합보고서에선 “여전히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지난한 소송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피해의 일부를 구제받을 수 있다”며 입법 권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에서도 권고와 관련한 내용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다. 배상 또는 보상의 기준, 범위 및 종류에 관해선 별도의 법률로 마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진화위 2기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배·보상 관련 내용이 담기긴 했지만 입법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별도 법률을 언제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시한도 없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 의지에 달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진화위 3기 출범을 위해 개정안을 서두르다 보니 당초 ‘2년 이내 배·보상 관련 법률을 마련한다’는 내용은 빼는 방향으로 국가 폭력 희생자 유족 측이 양보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소송비용 증가 추세는 최근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청구 건수가 늘어난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가손배소 사건은 2020년 1995건, 2021년 2274건, 2022년 2238건, 2023년 2146건, 2024년 407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다만 국가손배소에서 상소에 관한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가손배소 내용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기 때문에 기준을 설정해서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결과에서 너무 기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사안별로 구체적 타당성이나 법리적인 내용이나 혹은 형평성까지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계적 항소라는 지적에 대해선 최근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집단수용시설 사건 등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피해 입으셨던 분들 대상으로 상소했던 것들을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일괄적으로 취하하고 1심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판결 선고 후 상소 포기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