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는 정세 속에서 북핵 이슈가 강대국 외교 의제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흐름이 감지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8일 외교가에 따르면 최근 미·중이 국가안보전략(NSS) 등 주요 안보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 언급을 뺀 것은 결과적으로 북핵에 대한 우선순위 조정이라는 큰 틀을 공유하지만 세부적인 이유는 다르다.
이미 북한 비핵화에 대해 거리를 둬 오던 중국의 경우 대북 영향력 회복을 위해 전략적 침묵을 이어가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는 상당 부분 감소한 상태다. 최근 북한이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중국이 비난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건 이러한 묵인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비핵화라는 목표가 (중국) 내부적으로는 약간 변화되는 어떤 기류에 있다”며 “북한이 핵을 고도화하면서 인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대중국 견제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밀려난 것으로, 비핵화 목표 자체는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이 중국과 다르다. 반 교수는 “미국이 전 세계를 다룰 힘이 없어서 북한을 포함해 유럽과 유라시아가 우선순위에 빠진 것”이라며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Nuclear Power)이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뉘앙스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주요 강대국의 외교 전략에 변화가 생긴 상황에서 핵무기 기정사실화 전략을 펼치고 있는 북한의 의중대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한국이 미·중으로부터 꾸준히 북핵 문제가 언급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반 교수는 “미국의 세계 외교 전략에는 북한이 빠지더라도 한국과 일본을 만날 때는 북한 의제가 들어간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지속적인 목표로 만드는 차원의 한·미, 한·미·일 외교 협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박윤주 1차관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그것(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NSS)이 현재 우리의 한반도 정책”이라면서도 “한·미 정상이 합의하고 확인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해 최선의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중국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중국의 반도(한반도) 문제에서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