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국가책임제?…‘테스트 베드’ 경기도의 간병 SOS 프로젝트 [오상도의 경기유랑]

정부, 2026년 ‘간병비 급여화’ 시행…경기도, 2025년 2월부터 간병비 직접 지원
전국 시·도 중 첫 시행…65세 이상 저소득층에 연간 120만원 간병비 지급
김동연 “간병은 국가의 책무…따뜻한 손과 보이지 않는 손 함께 움직여야”
‘간병 SOS 프로젝트’ 예산 축소-대상 한정 등 과제…장기 청사진 제시해야

경기 여주시에 사는 70대 A씨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지 기능이 저하된 남동생을 37년간 홀로 돌봐왔다. 그는 “다른 가족이 없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생을 (내가) 늘 부축하는 등 힘에 부쳤다”며 “간병비 지원이 큰 도움이 돼 며칠이라도 마음이 편했다”고 털어놨다.

 

내년부터 국민주권정부의 ‘간병비 급여화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경기도가 고령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도입한 ‘간병 SOS 프로젝트’가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올해 2월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첫 출범한 이 사업이 10개월 만에 1000명 넘는 수혜자를 만들며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1급 장애를 앓던 30대 친딸을 38년간 간병한 뒤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60대 이모씨가 2022년 5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뒤 형이 확정됐다. 뉴시스

◆ 국민주권정부, ‘간병비 급여화’ 정책 꺼내…‘사각지대’ 지적도

 

8일 경기도에 따르면 간병 SOS 프로젝트는 도내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가운데 상해·질병으로 병원급 의료기관 이상에 입원해 간병 서비스를 받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횟수와 관계없이 연간 최대 120만원의 간병비를 지원한다. 지난 2월20일 시행 이후 지난달 말까지 1079명이 혜택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환자 본인에게 간병비를 직접 지원하는 건 경기도가 처음이다. 

 

시·군 심사를 거쳐 확정되면 신청인 계좌로 현금이 곧바로 지급된다. 간병서비스를 이용한 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나 경기민원24 누리집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효과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다발성 골수종으로 입원한 시어머니를 간호하는 남양주시의 B씨는 “어머님이 한 달 가까이 입원해 계셨는데 직장 다니는 자식들이 온종일 병원에 머무를 수 없었다”며 “간병비 지원으로 한시름 놓았다”고 전했다.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을 2년6개월째 간병해온 의왕시의 C씨도 “항상 통장에 돈이 부족했는데 기대치 않은 12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와 간병비로 요긴하게 썼다”고 말했다.

올해 3월 ‘간병SOS 사업’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연 지사가 도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 제공

도내 약 19만명의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가운데 이처럼 간병 비용을 일부라도 지원받은 사람은 △2∼3월 65건 △4∼5월 243건 △6∼7월 251건 △8∼9월 273건 △10∼11월 232건이다. 이달에도 3일까지 15명이 신청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도와 시·군이 사업비를 절반씩 분담한다. 올해 참여 시·군은 화성·광명·광주·이천·여주·평택·의왕·남양주·시흥·안성·양평·동두천·가평·연천·과천의 15곳이다. 내년에는 안산·포천을 포함해 17곳으로 확대된다.

 

앞서 김동연 지사는 9월 국회토론회에서 간병 SOS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간병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책임, 국가의 책무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병 문제에 ‘따뜻한 손’과 ‘보이지 않는 손’이 함께 움직여야 대한민국이 더 많은, 고른 기회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가 지난 3월 화성노인전문요양원에서 식사 보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 “간병은 개인·가족 문제 아닌 공공의 책임”…道, 정책 실험·정부 건의

 

정부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총 500개의 요양병원을 ‘의료 중심 병원’으로 지정해 일부 초고도·고도 환자에게만 건강보험 재정에서 간병비의 약 70%를 지원할 계획이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단순 돌봄을 받으려는 장기 입원환자를 배제하려는 것이지만, 중증·경증 치매 환자가 제외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이 같은 문제의 해법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총 사업비 85억원이 내년 32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도내 고령층 전반으로 온기가 퍼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그동안 대선 때마다 ‘간병국가책임제’는 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조기 대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안에 중증 환자가 생기면 간병비 탓에 파산한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는데 정부가 내놓은 청사진은 건강보험 재정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논란은 벌써 불거지고 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 탓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간병은 국가의 책무”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하게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광교 청사.

아직 정부는 이른바 의료 중심 요양병원의 선정 조건을 내놓진 않고 있다. 다만, 병동·병실·병상 수 등의 기준을 만족하고 정부 적정성 평가·인증을 받은 곳 가운데 치매·파킨슨 등의 입원환자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전제가 달릴 것으로 보인다. 

 

일정 자격을 갖춘 간병인을 병원이 직접 고용한다는 기준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설 간병업체 측은 간병 급여화에 대체로 반대하는 분위기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이미 궤도에 오른 상태다. 이에 향후 제도가 안착할 때까지 다양한 논의가 오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