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 대신 두부 본연의 정직함… 집밥의 깊이를 담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문경 시골손두부식당

시장 산책하다 들어간 오래된 식당
두부찌개 주문하자 12찬 한상 가득
작은 전골냄비에 보글보글 끓여 내와
시간 지나자 개운함에 칼칼함 더해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도 입맛 돋워
초겨울 경북 문경 산채의 풍경은 단풍이 진 계절에도 여전히 우아하다. 수업을 마치고 시장골목을 산책하다 ‘시골손두부식당’의 오래된 간판 앞에 섰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두부찌개는 그 어떤 고급 음식보다 깊은 따뜻함이 있다. 콩 본연의 힘이 그대로 살아 있는 한 그릇은 문경의 겨울을 더욱 포근하게 채워준다.

 

시골손두부식당 외관.

◆문경 방문

오랜만에 문경에서 특강이 잡혔다. 내 어릴 적 기억과는 다른 어색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12월의 겨울이다. 문경으로 내려가는 길 단풍은 지고 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운전하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문경에 들어서면 유독 하늘이 더 높고 맑아 보인다. 산 넘어 내리쬐는 햇살은 눈부심을 넘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수업이 끝나고 따뜻한 햇살을 벗 삼아 문경 산책을 나섰다. 학교 앞 멀지 않은 곳에 문경전통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장날이 아니라 다소 한산했지만 그런 시장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가 있다. 점심시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나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뒷모습을 보며 미리 찾아본 음식점으로 향했다.

 

메인 메뉴인 두부찌개.

시골손두부식당은 문경에서도 이른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그 모습을 간직했을 식당의 외관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다소 무심한 듯한 주인장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한쪽에서는 어느덧 얼큰한 막걸리 오찬이 열리고 있다. 난 참 이런 시장터 식당의 점심시간이 좋다. 급하지 않고 점잖지 않아도 된다.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자리에 앉으니 주전자에 뜨끈한 보리차가 담겨 나온다. 찌그러지고 빛바랜 주전자는 이렇게 무심히 많은 사람에게 첫인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식당 메뉴는 두부 요리에 특화돼 있다.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찌개류뿐만 아니라 건강한 재료들이 듬뿍 들어간 전골들도 있기에 모임에도 안성맞춤이다.

◆두부찌개

두부찌개를 주문했다. 큰 쟁반에 가득 올려진 12개의 반찬을 보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온다. 직접 담근 김치와 손맛 가득 느껴지는 멸치조림, 들기름 향 은은하게 도는 나물들이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데 특히 고들빼기김치는 쌉싸름한 그 맛에 입맛이 더 돌게 만들어 준다.

두부찌개는 작은 전골냄비에 보글보글 끓으며 나온다. 전골이 끓으며 퍼지는 고소한 향은 누가 봐도 시골손두부식당답다. 방금 막 끓인 찌개지만, 전골냄비라 직접 불에 올려 더 뜨끈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걸쭉하지 않은 국물을 천천히 조리다 보면 처음엔 맑고 개운했던 맛이 점점 칼칼함을 더해가고, 국물 색도 서서히 깊어져 간다.

큼직하게 썰어낸 두부는 전골냄비에서 고요하게 끓어가며 그 칼칼한 국물을 하나씩 머금는다. 두부가 국물의 향을 품을수록 원래의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에 감칠맛이 축적돼 간다. 숟가락으로 뜰 때마다 부서지지 않고 탱탱하게 결을 유지하는 그 두부의 식감이 너무 좋다. 뜨거운 국물 속에서도 형태를 잃지 않고 제맛을 끝까지 지키는 두부이기에, 찌개가 끓을수록 더 고소함이 응축되는 느낌이다.

 

밑반찬.

찌개의 시원한 기본 베이스는 콩나물이다. 아삭한 식감과 함께 개운한 맛의 국물 한 모금은 이 식사의 긴 여운을 맡는다. 콩나물은 단순히 시원함을 더하는 재료가 아니라, 이 집 찌개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인공 같은 존재다. 콩나물의 맑은 향과 두부의 고소함이 만날 때 비로소 이 두부찌개 특유의 깊은 맛이 완성된다.

뜨거운 찌개를 앞접시에 덜어 식히는 동안 반찬들을 천천히 음미했다. 푹 삶아 고소함만 남긴 호박나물, 씹을 때마다 들기름 향이 도는 숙주나물,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낸 아삭이고추.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푸근한 맛이다. 이 반찬들만으로도 밥 한 공기가 충분하다.

뜨거움이 한 김 빠진 두부찌개는 그야말로 술술 넘어간다. 국물이 살짝 졸아들면서 두부와 찌개가 더 밀착되고,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오늘 이 집을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부가 전골에서 하나둘 사라질 때쯤이면 괜히 아쉬운 마음마저 든다. 고기반찬 하나 없어도 이 두부찌개 하나면 충분히 행복하다. 시골손두부식당의 두부찌개는 화려한 기교 대신, 콩 본연의 정직함과 집밥 같은 깊이를 그대로 담고 있다.

 

시골손두부식당 메뉴판.

◆콩나물

콩나물은 언제나 식탁 한편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소박한 모양과 달리 비타민C, 아미노산, 식이섬유가 고르게 담긴, 서민들이 오래전부터 약처럼 먹던 재료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물과 콩만 있으면 누구나 길러 먹을 수 있어서 전쟁과 흉년 속에서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콩나물은 한국 사람에게 일종의 국물의 기본 같은 존재다. 냄비에 아삭한 콩나물이 들어가는 순간, 국물은 이미 반쯤 완성된 것처럼 느껴진다.

두부찌개에서는 특히 이 콩나물의 역할이 뚜렷하다. 두부가 고소함을 뽑아내는 동안, 콩나물은 그 바탕을 잡아주며 국물의 첫인상을 시원하게 정리해준다. 결국 이 단순한 나물 하나가 전체 맛을 안정시키고, 집밥 특유의 포근함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기술도, 비싼 식재료도 아닌데, 콩나물이 들어간 국물은 늘 마음 한쪽을 편안하게 눌러준다. 아마도 오랜 세월 한국 사람을 지켜온 재료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일 것이다.

 

■콩나물 된장 리소토 만들기

 

<재료> 콩나물 100g, 미소된장 10g, 찐쌀 100g, 콩나물 채수 300mL, 버터 50g, 다진 마늘 5g, 다진 느타리버섯 10g, 생크림 30mL, 소고기 50g, 그라나파다노 치즈 10g, 소금 약간.

 

<만드는 법> ① 팬에 버터를 두르고 다진 소고기와 마늘, 버섯을 넣고 볶는다. ② 소금 간을 한 뒤 머리를 손질한 콩나물 채와 쌀을 넣어준다. ③ 콩나물 데친 채수를 넣고 끓이다 된장을 넣는다. ④ 리소토 농도가 나오면 크림과 치즈를 넣어 풍미를 더해준다.

 

김동기 다이닝주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