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활용한 초국경 범죄가 잇따르면서 국내 수사기관과 정부가 미국산 가상자산 분석프로그램에 매년 수십억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기밀 등을 다루는 범죄 분석이 미국산 프로그램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세계일보가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올해 미국 가상자산 분석(인텔리전스) 프로그램 ‘체이널리시스’에 총 48억1400만원을 지출했다. 사이버 등 수사 부서에서 36억9000만원을 지출해 가장 규모가 컸고, 마약수사 등 형사에서 9억5400만원, 안보수사에서 1억7000만원을 각각 지출했다.
체이널리시스는 범죄에 활용된 가상자산 지갑주소의 자금 흐름을 분석하고 주요 거래소 및 범죄에 활용된 지갑주소 식별을 도와준다. 이 기업은 미국 재무부와 협력하면서 미국의 금융제재 등에 활용되고 있다. 체이널리시스는 계정당 연 1억원 수준의 구독료를 받고 있고, 정밀분석을 의뢰하면 따로 추가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도 금융사건 관련 가상자산 분석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불공정거래 조사를 위해 올해 체이널리시스 이용료 1억5000만원을 지출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7000만원을 냈다.
이처럼 가상자산 분석을 미국산 프로그램에 의존하다 보니 민감한 수사정보가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새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상자산 관련 국내 수사를 비롯해 북한 해킹그룹 등 안보 영역의 분석까지 미국산 제품이 활용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이나 자체 기술 개발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이널리시스의 범죄 지갑주소 등 데이터베이스(DB)도 미국인 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내 범죄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서준배 경찰대 교수는 “미국이 우방국이기 때문에 신뢰관계가 있긴 하지만 민감한 수사정보와 개인정보, 지갑주소 등에 대해서는 데이터주권 문제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이미 대검찰청 등 수사기관에서도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가상자산 추적 프로그램을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며 “수사 및 안보 기밀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당 프로그램을 신속히 국내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