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나약한 유럽에는 비전 없어… 강력한 유럽 원해”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 동맹국들 비난
영·프·독, “우크라 지원” 약속했지만
현실에선 ‘美 지속적 관여’ 요청할 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 몰려 있는 유럽 대륙을 향해 “유럽은 비전(미래 전망)이 없다”고 독설을 날렸다.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병력을 보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유럽 문명을 구한 미국이 19세기의 ‘고립주의’로 되돌간 듯한 모양새다.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를 했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압박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발을 빼려는 기색이 뚜렷한 가운데 트럼프는 유럽 책임론을 강력히 제기했다. 트럼프는 “나는 유럽에 대한 비전이 없다”며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강력한 유럽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유럽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9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 동맹국들을 겨냥해 “너무 쇠퇴하고 나약한 나머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로이터연합

앞서 지난 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 흔히 ‘유럽 3대 강국’으로 불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정상이 젤렌스키와 만나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우크라이나 편에 서겠다”고 강조했으나 정작 미국의 군사 원조가 중단된 뒤 우크라이나 안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관해선 말을 흐렸다. “미국의 지속적인 관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젤렌스키를 향해 “당신들(우크라이나)은 지고 있다”며 “내가 이 사안에 개입하기 훨씬 전부터 당신들은 영토를 잃었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누구도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고 덧붙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제공해왔다. 트럼프의 전임 대통령 조 바이든 행정부는 2차대전 당시 동맹국인 영국, 소련(현 러시아), 중국, 자유 프랑스 등을 돕기 위해 만든 ‘무기대여법’을 80여년 만에 되살려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공급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실패했고, 현재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20%가 러시아군 점령 아래에 놓여 있다. 푸틴은 해당 영토는 전부 러시아 땅이 돼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세 번쨰)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유럽 3대 강국’ 정상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젤렌스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UPI연합

2차대전 종전 이후인 1949년 미국 주도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출범했다. 이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서유럽과 북미 대륙 국가들이 하나가 되어 국제사회의 안보를 지키려는 게 목적이었다. 현실에 있어선 2차대전을 거치며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동맹국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1823년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가 표방한 ‘먼로 독트린’(유럽에 대해 고립주의를 추구한 반면 중남미에선 영향력 확대를 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은 폐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내놓은 새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먼로 독트린의 계승을 강조하며 북미와 중남미 등 아메리카 대륙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